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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하달하 Apr 18. 2019

역시 맥주엔 구운 고등어가 제 맛이죠

뮌헨에 사는 친구에게 한 수 배웠습니다

독일에 놀러 오는 친구들에게 무엇이 가장 해보고 싶냐고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 이야기를 꺼낸다. 독일에 오기 전, 나 또한 이 웅장한 맥주축제에 대해 큰 환상이 있었다. 그래서 독일에 오면, 꼭 뮌헨에서 가장 큰 비어가든에 가서 옥토버페스트를 즐기리라 다짐했었다. 하지만 결국 그 꿈은 아직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옥토버페스트를 가기는 했지만, 뮌헨이 아닌 스투트가르트에서 열린 맥주축제에 갔기 때문이다. 독일 친구들의 말을 빌리자면, 요즘 뮌헨의 옥토버페스트에는 외국 관광객들이 너무 많이 몰려 오히려 제대로 즐기기가 쉽지 않다고. 이들의 말에 의하면, 각 지역에서 하는 맥주축제 또한 신나게 마시고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넓고 탁 트인 비어가든에 미련이 있는 나는, 뮌헨에 출장이 있을 때마다 그곳에 사는 친구들을 불러 맥주를 즐기곤 한다. 우리네 포장마차처럼 가든을 쭈욱 둘러 줄지은 가게에는 치킨이나 소시지 등 요깃거리와 함께 손목이 아플 정도로 무거운 유리잔 가득 시원한 맥주를 파는데, 나는 주로 오븐에 구운 반마리 치킨이나 커리부어스트(Currywurst)라고 불리는 매운 카레소스를 얹은 구운 소시지를 주문한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가 주문해온 신기한 음식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바로 종이에 둘둘 말린 고등어였다. 그러고 보니 주위 곳곳에서 연기를 피우며 고등어를 굽고 있는 아저씨들이 보였다.


"세상에나. 고등어랑 맥주가 이렇게나 잘 어울릴 수 있다니!"


정말 환상의 궁합이었다. 나는 작은 나무 포크를 연신 휘둘러가며 한 손으로는 고등어의 살을 바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묵직한 맥주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언젠가 한국에서 친구들이 놀러 오면 꼭 구운 고등어와 맥주를 함께 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아직까지 독일에 들른 내 지인들 중 '고맥(고등어+맥주)'을 즐긴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대신 다들 우리네 족발과 비슷한 '슈바인학센(Schweinshaxe)'을 찾는다. 나 또한 독일에 처음 왔을 때는 학센을 꼭 먹어봐야겠다 싶었는데, 정작 내 주변의 독일 친구들은 일 년에 한두 번 학센을 먹을까 말까 할 정도로 드물게 찾는 음식이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먹었을 때 크게 감동이 오는 음식이 아니었기도 하고, 딱딱한 껍질을 뚫고 칼질하기가 불편할 수도 있으니 슈니첼(Schnitzel)을 먹어보는 게 어떻냐고 말을 꺼내면, 친구들은 돈가스랑 비슷하게 생겨 크게 흥미가 없단다. 하기는, 나라도 다른 나라에 놀러 가면 책이나 TV에서 자주 보던 요리부터 시켜 먹을 것 같지만 말이다.




지금은 작은 도시에 살아 친구들이 맛집이나 관광명소를 물어보는 일이 많이 줄었지만, 베를린에 살 때에는 독일 여행온 지인들에게 맛집이나 핫 플레이스를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종종 받곤 했다. 그럴 때마다 이것저것 알려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남편과 주로 집에서 요리를 해 먹는 나는 아는 것이 없어 아쉬움을 표하곤 했다. 가끔 남편과 외식을 할 때면 오히려 네이버 블로그의 맛집을 찾아다닌 적도 있다. 그럴 때면 맛깔난 사진에 가격이나 지도 같은 구체적인 정보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글에 감탄하는 동시에, 이 나라에서 태어난 현지인과 이 곳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은 허탈한 웃음을 짓곤 한다.


동글 납작한 치즈를 오븐에 녹여내어 빵이나 야채를 퐁듀처럼 찍어먹는 오븐케제(Ofenkäse, 오븐치즈)


독일에서 보내는 해가 늘어가면서 나도 나름의 추천 음식 리스트가 생기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터키의 케밥이라고 하는 게 더 옳을 것 같으나, 우리나라 김밥집만큼이나 흔하고 독일인들이 자주 찾는 도나(Döner). 길거리에서 흔히 보이는 구운 소시지를 넣은 빵이나 커리부어스트. 치즈를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알맞은 오븐케제(Ofenkäse, 치즈를 오븐에 녹여 빵이나 야채를 찍어먹는, 주로 슈퍼에서 사서 집에서 간단히 먹는 음식)나 케제슈베츨레(Käsespätzle, 수제비나 올챙이국수처럼 밀가루 반죽을 삶아 치즈와 함께 먹는 음식). TV에 나오는 다른 독일 음식들보다 볼품없을 수 있지만, 먹어보면 화려한 요리들보다 훨씬 맛있는 나만의 추천 메뉴이다.


처음에는 머리카락이 쭈뼛 서도록 짠 독일 음식에 혀를 내두르기도 했지만, 이제는 낯선 짭짤함 에 숨겨진 묘한 맛에 내 입이 길들여지고 있다. 가끔은 고소한 내 솔솔 나는 동글동글 귀여운 브로첸(Brötchen, 손바닥 크기 정도의 둥글고 작은 빵)이 생각나기도 하고, 어마어마한 양에 절반도 다 못 먹던 슈니첼을 소스까지 싹싹 비워낼 때도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의 나라 음식'으로만 보이던 것들이, 이 나라를 떠났을 때 그리워할 '나의 음식'들로 바뀌어가고 있다고나 할까.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나는 이곳에서 언제나 이방인이겠지만, 독일은 언젠가 떠나버릴지도 모를 내게, 이곳에 대한 향수  조각을 매일 선물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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