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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하달하 Apr 11. 2019

쌀밥에 소금을 뿌리다니요

도대체 내 하얀 쌀밥에 무슨 짓을 한 건가요

“해산물을 싫어하지만, 내 생일마다 맛있는 미역국을 끓여주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결혼식 때 남편을 향해 읽었던 편지 속 한 구절이다. 낯선 땅에서 누군가가 챙겨주는 따뜻한 미역국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행운이다. 이 한 그릇의 미역국이 지난 1년의 고단함도 가셔 주고, 앞으로 새로운 1년을 살아갈 수 있는 온기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남편은 생일 때뿐만 아니라 내가 아플 때나 기운 없이 축 쳐져 있을 때도 종종 미역국을 끓여주곤 한다.


유튜브에서 찾은 남편의 레시피에는 다진 마늘이 들어간다. 엄마가 끓여주신 미역국과는 달리 빠닥빠닥 덜 익은 미역의 식감이 낯설기는 하지만, 미역보다 더 많이 들어간 소고기 덕에 잘 다져 넣은 마늘과 어우러져 나름 깊은 국물 맛이 일품이다. 매해 먹다 보니 이제는 내 입맛이 남편의 미역국에 맞춰져 가는 중인 것 같다.


하지만 미역국을 끓여줄 때는 쌀밥이 함께 제공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른 나의 남편은, 2년 연속 내게 팔팔 끓는 미역국만을 담아 주었다. 첫 해에는 미역국을 끓인 것 자체 만으로도 너무 큰 감동이라, 나조차 밥이 없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렸고, 다음 해에는 남편을 실망시키기 싫어 밥을 찾는 대신, 남편이 출근한 사이 몰래 밥을 지어먹었다. 그리고 드디어 세 번째 생일 전, 조심스레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그런데 있잖아요. 미역국은 밥이랑 같이 먹는 거예요. 외국의 수프처럼 국물만 먹는 게 아니야."


왜 이제야 말했냐며 남편은 후다닥 쌀밥을 지어 미역국 옆에 놓아주었다.


"우와, 쌀... 밥...? 여보 여기에 뭐 넣었어요?"


아뿔싸.


"쌀이랑 물이랑... 소금!"


소금이라니. 파스타를 끓일 때에도 물 소금을 조금 넣으니, 여기서는 쌀을 끓일 때도 소금을 넣는 것이 너무 당연한 거라나. 나는 덕분에 쌀밥에 소금을 넣으면 입안에서 밥알이 꺼끌꺼끌 맴돌며 차마 꿀꺽 삼키기에 거북한 맛이 난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쌈장을 사랑하시는 시어머님와 얼큰한 국물도 잘 드시는 시아버님

새로 이사한 집으로 시부모님을 모셨다. 무슨 요리를 할까 고민하다, 남편이 좋아하는 닭갈비를 하기로 했다. 최대한 맵지 않게, 두 분이 드시기에 부담스럽지 않을 맛을 내려고 몇 번이나 간을 맞췄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혹시 매운맛이 안 맞을까 싶어, 다 익은 닭갈비를 오븐 그릇에 담아 치즈를 뿌려 녹여 식탁에 올렸다. 신선한 쌈 야채에 열심히 만든 쌈장을 함께 내었는데, 연신 젓가락을 움직이며 신나게 먹어주시는 부모님을 보며 드디어 한 숨을 돌렸다.


하지만 닭갈비의 닭들이 사라지고, 국물만 남을 때 즈음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였다. 매콤한 닭갈비와 쌈의 조합이 너무 좋다며 열심히 드신 어머님의 밥그릇에 쌀이 그대로 인 것이 아닌가. 뭔가 맛이 없었나? 아니면 동글동글한 우리네 쌀이 어머님의 입맛에 맞지 않았나? 나는 부모님께서 집에 돌아가시고 나서야 남편에게 그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밥에 간이 안 되어 있어서 그러셨을 거야. 너는 소금을 안 넣잖아."




음식 사진을 보면 떠올리는 맛이 있다. 이미 내가 먹어봤던 맛을 기억해내며 상상 속으로 그 맛을 음미한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똑같이 생긴 음식을 보고 내가 아는 맛을 떠올리는 순간, 큰 실망을 안는 경우가 발생한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즐겨먹던 돈가스 같이 생긴 슈니츨, 달콤한 소스를 떠올리며 한 입 먹으면 머리끝까지 쭈뼛서는 짠맛에 당황을 하곤 한다. 메뉴판에 적힌 '소시지 샐러드(Wurstsalat)'라는 이름에 야채로 만든 샐러드와 맛깔스러운 소시지 한 두 개가 곁들여 나올 줄 알고 주문을 하면, 그릇이 넘치도록 가늘게 썰린 분홍색 소시지가 나를 기다린다.


산더미처럼 쌓인 감자튀김 옆으로, 기다랗게 썰린 소시지들이 샐러드라는 이름으로 누워있다


특히 쌀밥은 가장 나를 슬프게 하는 메뉴이다. 아시아 음식이라면 동남아 음식이나 중국음식이 주인 이 곳에서는 항상 길쭉하고 물기가 없는 쌀밥이 나온다. 다행히 슈퍼마켓에서 '밀쉬라이스(Mischreis)'라는 종류의 동글동글한 쌀을 팔기는 하지만, 우리네 쌀만큼 찰기가 있지는 않다. 그런 탓에 어렵게 구한 한국 전기밥솥을 쓰고 있는 내게, 남편은 다 같은 쌀이고 밥솥인데 뭐 그리 대단한 차이가 있냐며 핀잔을 주었다. 한국에 가면 독일 빵이 그립다던 사람이 누구던가. 빵이 다 같은 빵이지. 한국 빵은 너무 달기만 하다나.


"아, 이래서 당신이 맛있는 쌀밥 타령을 했던 거구나."


한국에서 엄마가 해 주신 쌀밥을 먹고 난 남편이 말했다. 한국인 부인과 오래 살다 보니 이제 진정한 쌀밥의 맛을 깨우쳐가는 중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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