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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하달하 Sep 25. 2016

뻥쟁이 손녀

우리 집은 대대손손 내려오는 뻥쟁이 집안


"뻥이요~"


우리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엄마가 어릴 적부터 포항 죽도시장에서 뻥튀기 장사를 하셨다. 외할아버지는 한 번도 뵌 적이 없지만, 할아버지께서 일하시던 그 뻥튀기 가게는 할머니가 오랫동안 이어서 장사를 하셨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를 떠올릴 때마다, 세상에서 제일 고소한 냄새가 떠오른다. 작은 키에 오동통한 몸매를 지닌 우리 할머니는 걸걸한 성격에 술 한 잔 내기를 좋아해서 친구도 많고 동네에서도 유명한 분이셨다. 이제는 연세도 많고 거동도 불편하셔서 더 이상 일은 하지 않으시지만, 그래도 여전히 시장 안 유명인사이시다.


우리 집안 그 누구보다 술을 잘 드시는 우리 할머니는 흥도 많다. 동네에 있는 의료기 판매장, 그러니까 주로 어르신들을 모시고 주기적으로 물건을 판매하는 동시에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매일매일 흥겨운 놀이의 장을 열어주는 곳에 가서 친구들과 노는 것이 할머니의 가장 큰 낙이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시면, 가끔 저녁식사와 함께 소주를 한 잔 걸치신다. 가족들이 다 모여 앉은 날에 술이 좀 오르시면, 할머니는 다 함께 노래를 하자신다. 다른 이의 노래를 듣고 싶다기보다는, 할머니께서 노래를 부르고 싶으시기 때문이다. 목청이 좋은 우리 할머니는 노래도 참 맛깔나게 부르시는데, 나는 무엇보다도 할머니의 여흥구가 참 좋다. '꼬야꼬야~' 아무 의미 없는 이 단어를 어찌나 귀엽게 외치시는지, 나도 모르게 어깨춤이 절로 난다.


노래를 부르시는 우리 김석임 씨. '꼬야꼬야' 저렇게 손을 흔들어줘야 제 맛.


우리 할머니는 나보다 오빠를 더 좋아하신다. 정말 대놓고 그렇게 말씀을 하신다. 오빠가 인물도 낫고, 착하다고. 바른 말씀이라 뭐라 대꾸할 수가 없다. 할머니는 말썽꾸러기 사위, 우리 아빠에게도 잘 생겨서 봐준다고 하셨던 분이다. 밉다 하시면서도 일찍 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보낸 우리 아버지께 유일한 어머니가 되어주셨다. 그리고 나에게는 맨날 '뻥쟁이'라 하신다. 내가 하는 이야기는 절대 곧이곧대로 들으시는 법이 없다.


"할머니, 제가 집 사드릴 테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나는 진심으로 드린 말씀인데, 이 얘기를 드릴 때마다 그렇게 나를 구박하신다. 절대 자식이랑은 같이 안 산다, 나는 혼자가 편하다시며 완강히 어느 자식에게도 가지 않는 할머니. 평생을 좁은 뻥튀기 가게에 계셨기에 너른 집에 모시고 싶은데, 굳이 같이 살기 싫으시다면이야. 따로 사드리는 수밖에. 저 발언의 기저에는 이러한 생각이 깔려있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안 지킬 거면 말을 말라며, '뻥쟁이 손녀 아니랄까 봐, 야가 뻥치는 것 좀 보소' 하신다. 그래 놓고는 내가 저 말을 할 때마다 박장대소를 하며 좋아하신다.


"할머니, 저 돈 잘 벌어요."


나는 외갓집의 막내이다. 내 나이가 서른이 넘었음에도 나는 평생 막내이다. 우리 할머니는 내가 이것저것 선물을 사 갈 때마다 '뭐할라꼬 이런 건 사왔노'하신다. 서울에 혼자 살던 내게, '밥이나 잘 사 먹으라'며 호통을 치신다. 한 번은 우리 할머니의 통통한 발을 보호해 줄 천 원짜리 수면양말을 사 갔는데, 밤늦도록 일한 돈으로 뭘 이런 걸 사왔냐셨다. 할머니를 뵙기 몇 주 전, 느닷없이 저녁 열 시가 다 되어 걸려온 할머니의 전화에, 야근 중이라 말하는 손녀가 꽤나 안쓰러우셨나 보다. '쪼깨 난 게 얄궂구로' 그 시간까지 일하고, 보송보송 고급지게 부드러운 양말을 사 오니 할머니는 차마 받을 수가 없다고 하셨다.


몇 해 전, 포항 사는 사촌언니 결혼식 날. 이때는 지금보다 피부가 더 좋으시네. 이때는 다리도 안 아프셨겠지.


나는 할머니 용돈쯤은 충분히 드릴 수 있는데, 할머니는 맨날 나를 가난한 사람으로 취급하신다. 오빠한테는 귀티가 난다 하시면서, 나는 그렇게도 가난해 보이나 보다. 명절에 용돈을 드려도, '돈도 없으면서'라며 안 받는다고 하신다. 하지만 꼭 한 번 더 '에이~ 받으세요, 할머니~'라고 받아쳐야 한다. 그러면 아주 재빠른 손길로 봉투를 열어 꼭 내 앞에서 보란 듯이 세어 보신다. 그리고 내가 드린 그 용돈은 의료기 가게에서 만난 친구들의 동전 커피 값으로 쓰이게 될 것임을 나는 안다.


"할머니, 우리 사진 찍으러 가요."


아직 할머니께 하지 못한 말. 오빠와 나 모두 서울에서 결혼식을 올려, 장거리 이동이 힘든 할머니는 참석을 못하셨다. 그 꼬장꼬장한 어르신이 자꾸 여기저기 아프시다는 걸 보면, 할머니랑 같이 제대로 된 사진 찍을 시간이 많이 안 남은 것 같은데 외손녀 결혼사진 안에 할머니의 모습이 없는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내년 설에 가면, 꼭 웨딩드레스 입은 손녀랑 할머니랑 같이 사진을 찍으려 한다.


얼마 전 엄마와 통화를 하니, 할머니께서 필요 없는 물건을 하나씩 버리신다고 하셨다. 멀쩡한 한복도 앞으로는 입을 일 없으니 버리신다기에, '은지가 엄마랑 사진 찍고 싶대요, 가족사진 찍을 때 한복 입어야지'했더니 다시 고이 접어 옷장에 집어넣으시더란다. 내가 말했으면 빈소리 하지 말라며 안 믿으셨을 텐데, 엄마가 말하니 금세 믿으셨나 보다. 이래 놓고 막상 내년이면 '귀찮구로, 안 갈란다' 하시겠지만, 꼭 밀어붙여서 더 늦기 전에 할머니와 찍은 멋들어진 사진 한 장 남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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