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하달하 Oct 01. 2016

언니가 돌아왔다

어린 나의 눈에 가장 멋지던 대학생

내가 많이 사랑하는 우리 큰엄마의 막내딸. 어릴 적, 우리 집안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을 뽑으라고 하면 나는 언제나 지영이 언니를 떠올렸다. 다소 쌀쌀맞아 보이지만, 요즘 말로 '츤데레'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누구보다 동생들을 잘 챙겼던 대구 큰집 막내 언니. 대구 큰집에 작은 전축이 있었는데, 언니는 내가 갈 때마다 드라마 질투에 나오는 '빰바밤빰빠빠밤~ 넌 대체 누굴 보고 있는 거야'라는 노래를 틀어 주었다. 몇 번이고 더 틀어달라고 하면, 군말 없이 또 듣게 해주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언니가 질투에 나오는 최진실보다도 더 예뻐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언니 화장이 그리 세련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우리 집안에서 그렇게 빨간 립스틱을 바를만한 사람이 언니밖에 없었으니 그게 제법 예뻐 보였나 보다.


그런 지영이 언니는 공부 욕심이 많았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어쩌면 막내이기 때문에 위에 있는 오빠나 언니보다 조금은 이기적으로 본인의 꿈을 향해 달려갈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언니는 가정학과 심리학을 전공하고 심리상담 전문가가 되었다. 그러는 사이 훤칠한 키에 잘생긴 신랑을 만난 언니는 결혼을 하고, 아들 딸 고루 낳은 한 가정의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명절에 큰집을 가도 언니의 얼굴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던 언니가 돌아왔다. 언니는 한 번도 어디론가 떠난 적이 없지만, 내게는 헤어진 언니를 다시 만난 것처럼 어느새 초등학생이 된 조카들을 데리고 큰집에 나타난 언니가 사라졌다 돌아온 사람처럼 반갑게 느껴졌다. '질투' 노래나 틀어달라며 징징 대던 코 찔찔이가, 어느새 회사원이 되고 결혼까지 했으니, 언니 눈에는 내가 '다시 돌아온 동생'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어른이 된 나는, 혼자 답답한 일이 생길 때마다 언니를 찾았다. 독일로 떠나겠다는 결정을 할 때도, 결혼이라는 인생의 큰 순간을 맞이 할 때도, 언니는 나의 개인 상담사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내 기억 속에는 없는, 언니는 본인의 어릴 적 기억들을 꺼내 보이며 내 상처를 보듬어주기 시작했다.


그리운 골목 안 우리집, 언제나 손에는 먹을 것을 쥐고 있던 박씨 집안 막내 나, 그리고 든든한 대장 우리 오빠.


독일에 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던 어느 날, 오빠와의 대화 중 부모님의 노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오빠는 대뜸, 내게 '나중에 부모님 독일 모시고 가라'는 말을 내뱉었다. 독일이 살기가 좋으니 모시고 가는 것이 어떠냐는 말이기는 했지만, 뜬금없는 그 소리가 무슨 의미인지 바로 이해하지를 못했다. 그리고는 무심히 덧붙이는 말. '네가 독일 가고 나면 온전히 나 혼자 부모님 모시는 거잖아.' 하아. 왜 그런 소리를 했을까. 큰 의미가 없었을 수도 있지만, 나름 힘든 결정을 하고 독일로 향하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는 서운함이 밀려왔다. 속으로는 '내가 부모님께 더 살뜰히 잘 하는 것 같은데, 오빠는 왜 저런 말을 나에게 할까'하는 생각에 화가 나기도 했다. 오빠의 그 말은 일주일이 지나도록 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안부 전화겸, 투정 부릴 겸, 나는 지영이 언니에게 연락을 했다. 서운하다고. 오빠가 나에게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먼길 떠나는 동생에게 '괜찮냐'는 한 마디 걱정 못해줄 망정. 혼자 떠나버리는 이기적인 동생이라고 손가락질하다니. 그때 지영이 언니의 옛날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은지야, 너는 어려서 기억을 못 하겠지만, 언니는 혁이 어릴 적 모습이 아직도 기억이 나. 그래서 항상 가슴이 아파."


우리 오빠가 겨우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였단다. 술에 취해 걷지도 못하는 아빠를 들쳐 매고, 비틀비틀 몸도 못 가누며 아빠를 끌고 가던 오빠. 무언가 잔뜩 화가 나서는, 술 취한 아빠를 남의 손에 맡기지 않고, 그렇게 어린 몸으로 아빠를 이고 가던 오빠의 뒷모습이 그렇게 마음이 아팠단다. 내 눈에는 맨날 화만 내는 나쁜 오빠 일지 모르겠지만, 어른들이나 사촌 언니 오빠들은 모두 오빠가 얼마나 가족을 지키려 애를 썼는지 알고 있다고 했다. 어쩌면 이제 어른이 되어 오빠의 옆에서 힘이 되어줄 수 있는 동생이 멀리 떠나버리는 게 서운할 수도 있다고. 이제껏 오빠가 고생했으니, 조금은 나에게 기대고 싶을 수도 있을 거라고.


나는 여전히 오빠가 밉다. 하지만 오빠가 평생 짊어지고 사는 '장남'이라는, 혹은 '가장'이라는 짐은 내가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무겁다는 것을 잘 안다. 지영이 언니 또한 막내이기에, 큰오빠나 큰언니가 겪얶던 아픔은 다 이해하기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어릴 때는 언니 오빠를 그렇게 미워하고 원망했다고. 아마도 그런 마음이 언니의 가슴속을 스쳐갔기에, 나를 더 자신처럼 이해하고 다독여줄 수 있는 게 아닐까. 최근 가족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한 나에게, 언니가 이런 말을 했다.


"언니도 상담을 하거나 강의를 할 때,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해. 은지가 이렇게 가족에 대한 글을 쓰는 것처럼. 그런데 말이야, 어쩌면 우리가 막내라서, 우리가 받은 상처가 가장 작고 가벼워서, 이렇게 누군가에게 우리 이야기를 시원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어."


나는 언니의 이야기에 깊게 공감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큰오빠와 큰언니의 이야기 대신, 지영이 언니의 이야기를 하게 된 것도, 그 둘의 이야기가 너무나 가슴 아프고 아직은 꺼내놓기가 힘들어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

이전 14화 뻥쟁이 손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