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한 견에 쌓여있던 엄마의 책, 그리고 엄마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국어수업 시간, 선생님께서 뜬금없이 '여러분은 무슨 책을 좋아해요?'라고 물으셨다. 우물쭈물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그 질문이 퍽이나 마음에 들었다. 어제 저녁 어머니께서 읽어주셨던 책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박노해 시인의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책을 좋아합니다."
나는 초등학생의 입에서 나온 책 치고는 놀랍다는 표정을 짓고 계시던 선생님께, 어머니께서 독서를 좋아하시고 좋은 글을 모았다가 읽어주신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께서는 내게, '훌륭한 어머니를 두었구나'하며 칭찬해주셨고, 나는 금세 친구들 앞에서 어깨가 으쓱해졌다. 나는 어릴 적부터 엄마의 책에 둘러싸인 채 자랐다. 심심할 때마다 멍하니 엄마의 책장에 꽂힌 책들의 제목을 읽어 내려갔다. 그러다 호기심이 생기는 제목을 발견하면, 그 책을 꺼내 요리조리 훑어보고는 다시 책장에 꽂아놓았다.
이렇게 책을 사랑하는 우리 엄마는 항상 식탁에서 책을 읽으신다. 어릴 적 오빠와 내가 정신없이 아침밥을 먹고 학교로 향하고 나면, 그 식탁은 고스란히 엄마의 책상이 되었다. 술에 취해 잠이든 아빠가 일어나기 전까지, 엄마는 매일 아침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끓여놓고 그곳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었다. 그래서 우리 집 식탁 위에는 언제나 몇 권의 책이 쌓여있었다. 엄마는 좋은 글귀를 만날 때마다 오빠와 내게 들려주고 싶어 밑줄을 그어 놓으시고는, 가게를 마치고 들어온 늦은 저녁, 우리를 앉혀놓고 엄마의 책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엄마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던 나와는 달리, 유난히 독서를 싫어하는 오빠는 은근슬쩍 자리를 피해 도망가기 일쑤였는데, 그럼에도 포기를 모르는 우리 엄마는, 다음날 아침 식탁에서 밥을 먹고 있는 오빠 앞에서 조심스레 그 책을 펼쳐 들고는 밑줄이 그어진 부분을 다시 읽어주시곤 했다.
나는 홀로 서울에 올라와 대학생활을 하던 시절부터, 엄마처럼 식탁이고 침대 맡이고, 내 손이 닿는 곳이면 으레 한 두 권의 책을 쌓아두었다. 아마도 엄마의 식탁을 보고 자라, 책이 놓여있지 않은 식탁을 보는 것이 어색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처럼 열심히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마음에 드는 책을 만나면 누구를 보여줄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열심히 밑줄을 긋고 토를 달았다. 그리고 한 권을 다 읽은 후에는 책의 날개면에 나의 생각을 끄적여두곤 했다. 독일로 떠나기 전, 서울에 있던 내 책들은 모두 포항 부모님 댁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엄마는 어릴 적 내가 그랬던 것처럼, 집안 한 켠에 쌓인 내 책들을 한 권씩 꺼내 읽기 시작하셨다. 책의 내용보다도, 여기저기 숨겨진 내 밑줄이며 낙서를 찾는 일이 보물찾기를 하는 것 마냥 즐겁다고 하셨다.
나는 그런 어머니께 멋진 서재를 마련해 드리는 것이 꿈이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엄마의 소중한 책들을 멋들어진 책장에 가지런히 꽂아놓고, 큼직한 책상과 편안한 의자가 있는 곳에서 마음껏 책을 읽게 해드리고 싶다. 하지만 엄마는 아직도 손때 가득 묻은 골동품 식탁이 그렇게 좋으시단다. 엄마의 고단한 일생을 함께해주었으니 그 정이 오죽하겠는가. 거기다 며느리고 사위고 그 식탁에 앉아 엄마의 첫 밥상을 받았으니, 엄마에게 그 식탁은 책상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듯하다. 어차피 헤어지지 못할 녀석이라면, 나는 앞으로 그 식탁 위에서 보내는 엄마의 하루하루가, 엄마가 좋아하는 책들의 한 페이지처럼 밝고 행복하기만을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해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