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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하달하 Mar 30. 2017

엄마의 빵점짜리 연애

그녀는 참으로 남자 보는 눈이 없다

우리 엄마가 들려주는 오빠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어느 영웅의 일대기를 듣는 것만큼이나 흥미롭다. 가게일을 마감하느라 바쁜 엄마를 대신해 자기 스스로 기저귀를 갈고,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나를 괴롭힌 친구들을 찾아내 혼내주고. 오빠는 자기 일도 척척, 거기다 어린 동생까지 잘 보살피는 착한 아들이었단다.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언제나 오빠의 정의로운 면모가 잘 드러나도록 도와주는 내 이야기가 함께 나온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우리가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몽둥이를 드셨던 우리 어머니, 무작정 감정적으로 화를 내시기 전에 일정한 조건을 주고 우리가 스스로 잘못한 정도를 판단하게 하셨다.


"형제끼리 싸우는 건 옳지 않은 일이야. 엄마는 상황을 못 봤으니까, 스스로 자신이 얼마나 잘못했는지 생각해보고 한 대에서 열 대 중에 몇 대를 맞을 건지 얘기해."


"열 대요."

오빠가 말했다.


"한 대요."

내가 말했다.


왜냐면 오빠가 날 놀려서 싸운 것이니 전적으로 오빠 잘못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는 한숨을 쉬며, 정말 내가 한 대 정도의 잘못밖에 저지르지 않았는지 물어보셨다. 우리의 체벌 시간은 주로 이렇게 시작되고 끝이 났다.


한 번은 엄마가 회초리를 들기 직전, 내가 오빠 손을 잡고 집 앞 골목으로 도망을 갔단다.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너는 꼭 그렇게 고집이 세고, 오빠는 내 탓이오하며 순순히 잘 따랐어.'라 말하는 어머니께, 나는 이런 질문을 드리고 싶다. 오빠보다 네 살이나 어린 내 힘으로 오빠를 끈다고 순순히 끌려왔겠는가. 본인도 도망가고 싶으니 함께 나갔을 텐데, 엄마 기억 속에는 그저 '착한' 아들이 고집불통 딸에게 잡혀 도망갔다 정도로만 남아있는 것 같다.



그렇게 엄마에게 완벽하기만 한 아들은 이제 예쁜 색시를 만나 장가도 가고, 토끼같이 귀여운 딸을 낳아 머나먼 서울에서 열심히 잘 살고 있다. 다만, 가장이 되고 바쁜 회사 생활에 치이며 부모님을 뵈러 갈 기회가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 엄마에게는 꽤나 서운한 일일 법도 한데, '회사일이 바쁘겠지', '무슨 일이 있겠지' 하며, 혹여나 오빠가 신경 쓸까 전화조차 주저하는 우리 엄마. 참으로 바보 같은 짝사랑이 아니겠는가.


나도 새언니도 오빠에게 서운한 일이 생기면 엄마에게 쪼로로 일러바치는 데도, 엄마는 오빠에게 일언반구도 하지 않으신다. 우리에게 의리를 지키는 것일 수도 있지만, 엄마가 오빠에게 따끔한 소리를 좀 해주셨으면 하고 은근히 말씀드릴 때에도 엄마는 끝내 오빠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를 못 하신다.


술에 취해 불같이 화만 내는 아빠를 보고 자라게 해서, 학교 갔다 와서 인사도 못 받아준 채 짜장면 그릇을 씻게 해서, 군대에 있을 때 가게 문 여느라 면회 한 번 못 가봐서. 엄마는 그래서 오빠에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단다.



그러고 보면 아빠를 만나 시집을 간 것부터가 엄마의 바보스러운 연애의 시작이었다. 번듯한 회사에서 따박따박 월급 받는 소꿉친구는 남자같이 느껴지지 않는다며, 길 건너 짜장면집 별난 총각을 만나 결혼을 하다니. 없는 살림에 동생들 건사하는 젊은 청년이 대단해 보였다는데, 좀 여우같이 따져보고 결정했다면, 호랑이 남편에 천방지축 시동생들 뒷바라지는 안 해도 되지 않았겠는가. 거기다 화목한 저녁 식사자리에서 술 한잔 걸치며 노래자락을 불러내던 외할아버지의 향수에 취해 술 좋아하는 아빠를 만났다는데, 이 대목에서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를 원망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 옛날 우리 아빠는 꼬맹이인 내가 봐도 참 이상하게 꼬인 사람이었다. 엄마가 차려주는 맛난 밥에 고맙다는 말은커녕 반찬 하나하나에 트집을 잡고, 엄마가 예쁜 옷을 사와도 '필요도 없는 걸 왜 사 왔냐'며 거들떠보지도 않던 아빠. 더 웃긴 것은 그렇게 일 년이 넘도록 옷장에 처박아 둔 새 옷을 사계절이나 묵힌 다음, 한 번 입기 시작하면 닳을 때까지 그 옷만 입는다는 사실이다.


지금의 신랑을 엄마에게 소개할 때, 우리 엄마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셨다. 아빠처럼 까탈스럽고 괴팍하지 않아 다행이라며, 순하고 성실한 신랑 만나 다행이라 하셨다. 무엇보다 아빠나 오빠처럼 버럭 화를 내는 스타일이 아니라 더욱 좋다고 하셨다. 그러나 같이 살아보니, 연애할 때와는 전혀 다른 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황당했던 점은 본인이 입던 스타일이 아니면 아무리 예쁜 옷을 골라줘도 쳐다도 안 보다가, 어쩌다 겨우 한 번 입어보고 나면, 그 옷과 똑같은 옷만 줄곧 사 오는 것이었다. 심지 깊은 소신으로 보였던 그의 성격이 아빠의 소고집과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심이 드는 순간이었다. 또 자신의 머릿속에 세워둔 계획이 살짝이라도 틀어질라치면, 팽하고 삐지는 모습이 꼭 우리 오빠 같아 보이기도 했다.


역시 나도 엄마처럼 연애에는 빵점인 여자란 말인가. 아, 엄마도 나도 까맣게 속았다. 이래서 결혼 전에 이 남자 저 남자 많이 만나보라는 옛말이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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