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에게도 엄마 밥이 있었으면
나는 엄마의 밥상이 참 좋다. 적어도 삼사십 년은 해왔을 요리지만, 매번 '맛있어야 할 텐데'를 수십 번 되뇌며 만드는 엄마의 밥. 화려하지 않지만 정성이 가득 담긴 엄마의 밥은 세상 무엇보다 맛있고 귀하다. 서울살이를 하며, 가끔 집에 내려갈 때면 나는 언제나 엄마에게 된장찌개를 끓여달라고 했다. 엄마가 특별히 사다 놓은 고기 덩어리는 저기 냉장고 깊숙이 넣어두더라도, 나는 엄마의 된장찌개가 그렇게 먹고 싶었다.
나의 신랑 마크도 된장찌개를 참 좋아한다. 고깃집에 가서 삼겹살에 돼지갈비를 먹고 나면, '된장찌개 주세요'하고 먼저 주문을 할 정도다. 숟가락으로 듬뿍 건더기와 국물을 떠서는 하얀 쌀밥에 쓱쓱 비벼 맛있게 먹는 모습이 꼭 한국사람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된장찌개뿐만 아니라, 떡국이나 김치찌개도 잘 먹는 마크 덕분에 엄마는 마서방이 집에 갈 때마다 새벽부터 분주히 요리를 하신다.
나는 어릴 적부터 '결혼을 하면 꼭 시어머니께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배워야지'하는 야무진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내 남편도 분명 '엄마 밥'이 그리울 테니까, 잘 배워서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에게 '마크의 엄마 밥'을 가르쳐줄 사람이 없다. 마크를 낳아주신 어머니는 오래전 돌아가셨고, 현재 아버님과 함께 계시는 시어머니의 밥상은 마크가 그리워하는 엄마 밥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우리 엄마는 마크가 처음 포항 우리 집에서 밥을 먹은 날, '은지야, 마크한테 이제 포항 올 때마다 엄마 밥 먹여준다고 해'라며 마크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셨다. 유일한 부작용이라면, 아침상부터 거하게 불고기를 내주시는 어머니 덕에 커피 한 잔에 바나나 하나 먹고 출근하는 마크가 눈을 뜨자마자 밥상 테러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독일은 생일 때마다 본인의 케이크를 구워 회사로 가져간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의 경험에 비춰보면, 주위에서 챙겨줘야 할 생일에 왜 본인이 사서 고생을 하나 싶지만, 행복한 날에 나를 축하해주는 사람들을 위해 정성껏 케이크를 굽는 독일 친구들이 소박하고 다정하게 느껴지도 한다. 마크도 그렇게 매해 생일 때마다 케이크를 구워 회사로 가져갔단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동그란 빵에 하얀 생크림이 덮인 케이크가 아니라, 주로 파운드케이크처럼 네모진 모양의 빵 - 독일에서는 이런 종류의 빵들도 케이크라고 부른다 - 을 가져간다. 독일에 오고 첫해는 마크 형수님의 도움을 받아 난생처음 사과 케이크를 만들어 보냈는데, 올해는 뭔가 스스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몇 주동안 고민에 잠겨있었다. 그러다 마크에게 조언을 구하자, 마크는 김밥을 만들어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며 신선한 제안을 해 주었다.
전기밥솥이 없는 나는 새벽부터 일어나 냄비밥을 짓고, 재료를 손질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혹시나 김밥을 안 좋아할 사람들을 위해, 불고기를 넣은 토르티야 롤도 함께 만들었다. 결혼 이후에 처음으로 부인의 음식 솜씨를 보여줄 기회이다 보니 혹 맛이 없으면 어쩌나, 입맛에 안 맞으면 어쩌나 음식을 준비하면서도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우여곡절 김밥과 불고기 롤을 담은 여덟 개의 도시락을 완성하였다. 부족한 재료에 이 정도면 훌륭하다 스스로를 위로하며, 종이 가방에 도시락을 차곡차곡 담아 남편의 손에 들려 보냈다.
평소보다 늦은 출근에 마음이 조급했을 만도 한데, 생일을 맞은 어린아이마냥 도시락이 든 종이 가방을 들고 환하게 웃는 마크를 보니, 남편을 출근시키는 부인의 마음이 아니라 아들을 등교시키는 엄마의 마음이 느껴지는 듯했다. 마크를 배웅하고 어지러운 부엌으로 들어서면서도 나는 내내 '낯선 한국음식이 입맛에 안 맞으면 어쩌나'하는 걱정이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회사를 마치고 돌아온 마크는 여전히 신이 난 채였다. '다들 깜짝 놀랐어!'라며 환희에 가득 찬 증언을 이어갔다. 다들 생선이 든 초밥인 줄 알았는데, 자기가 이건 '김밥'이고 아내가 불고기를 넣어줬다고, 이건 한국음식이라며 김밥을 소개했다고 한다. 불고기가 든 토르티야 롤도 유자청과 크림치즈, 견과류가 들어가서 다들 처음 먹어 보는 맛에 신기해하며 맛있게 먹었다고 했다. 하지만 마크의 말과는 다르게 종이 가방 속에는 두 개의 도시락이 남아있었다. 금세 시무룩해져 마크에게 왜 음식을 남겨왔냐고 했더니, 이따 스케이트 보드 타러 가서 만나는 친구들한테 주려고 일부러 남겨온 것이라고 했다. 별거 아닌 솜씨인데 동네방네 자랑하려는 남편이 귀엽기도 하고, 하루 종일 행복해하는 모습에 고맙기도 했다.
생일 저녁은 마크가 좋아하는 닭갈비. 케이크를 못 구우니 치즈를 올린 닭갈비 접시에 'Happy Birthday' 푯말과 생일 초를 꽂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 엄마가 특별한 날이면 늘 해주시던 갈비찜을 만들고 싶었는데, 생일자의 소원을 들어주는 게 옳은 결정이라 믿고 마크가 먹고 싶어 하던 닭갈비를 해주었다. 뭐든 내가 해주는 걸 잘 먹어주는 마크가 참 예뻐 보였다. 맛있게 저녁식사를 하던 마크는, '이렇게 누군가가 내 생일을 기다리고 나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 준 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처음이었던 것 같아'라고 말했다. '엄마 밥'을 해주고 싶었는데 맨날 한국 음식만 해줘 미안하댔더니, 자기는 내가 해준 '아내 밥'도 좋단다.
문득 작년 마크 생일이 떠올랐다. 평소 엄마 이야기를 잘 하지 않던 마크에게, '생일인데 어머니 떠올리며 감사한 마음을 전해보는 건 어때?'라고 물었던 나.
"나는 단 한순간도 엄마 생각을 하지 않은 적이 없어."
마크는 이 말을 뱉고서 내 앞에서 처음으로 숨을 못 쉴 정도로 서럽게 울었다. 엄마를 잃어본 적 없는 내가 뭘 안다고 마크에게 그런 말을 내뱉었을까. 짐작할 수 없는 마크의 슬픔에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파왔다. 마크가 오랜 시간 지녀왔을 엄마의 빈자리를 모두 채워줄 수는 없지만, 장모님의 밥이, 그리고 아내의 밥이 마크의 시린 마음을 조금이나마 따스히 감싸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마크가 내 남편이 되고, 내가 마크의 아내가 된 것은 어쩌면, 서로가 가진 작은 마음과 정성이 상대방의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나는 아주 조심스레 내가 하늘에 계신 마크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마크의 생일 선물이었기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