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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못난이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못난이』, 박완서 글, 길성원 그림

by 달하달하

요즘 들어 한국에서 좋은 동화책 고르는 것이 쉽지 않음을 느낀다. 예전에는 큰 서점에 가서 들썩들썩 책들의 줄거리를 대충 읽어보고 고를 수가 있었는데, 얼마 전 서점을 가보니 아이들이 읽을만한 책들을 모조리 투명한 비닐로 꽁꽁 싸놓고 제목을 빼고는 안의 내용을 전혀 볼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아이들이 신나서 마구 넘겨보다 찢어지면 안 돼서 그랬겠거니 싶으면서도, '이러면 어떤 아이가 서점에 오는 재미를 느끼겠나' 싶어 조금 헛헛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한국에 가면 애들을 데리고 동네 도서관을 가려했는데, 동네 주민만 출입이 가능하다는 안내문에 설레던 마음이 식었던 기억이 있다. 어떻게든 좋은 동화책을 찾아내겠다는 일념으로 네이버 검색창을 두드리면, 새로 나온 전집을 소개하는 블로그 글들이 우수수 쏟아지지만, 대부분이 새로 나온 전집을 소개하는 내용이고, 엄청나게 성공한 동화책이 아니고서는 웬만해서는 단행본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 좋은 동화책을 알고 있다면, 거침없이 댓글을 남겨주기를 조심스레 부탁해 본다.)


어느 날 서점앱에서 박완서 작가의 에세이집을 찾다, 작가님의 작품목록에서 이 동화책을 찾게 되었다. 제목만으로는 감이 잘 잡히지 않아 내용을 짐작하기는 어려웠지만, 아이들이 좋아할 내용이 아니어도, '박완서 작가의 동화책'이니 묻고 따지지도 않고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얼른 쇼핑카트에 집어넣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빛나'라는 아이인데, 글의 초반에 할머니가 포대기에 싸인 아기를 보고 집이 환해지는 것 같다며 빛나라는 이름을 지어주셨단다. 예전 작가님의 에세이에서 손녀에 대한 글을 본 적이 있어 어쩌면 박완서 작가님의 실제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 혼자 피식 웃음을 지으며 글을 읽어 내려갔다. 늦둥이인 빛나는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부족한 것 없이 자라, 가끔은 새로운 장난감을 사달라며 떼도 쓰는데, 하루는 고모집에서 사촌인 고은이의 '못난이' 인형을 탐내어 울고불고 난리를 피운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인형은 고모가 고은이와 빛나 둘에게 같이 사준 인형이었고, 빛나의 오빠인 어진이가 '왜 같은 인형인데 고은이의 못난이가 더 예뻐 보였는지'에 대해 알려주면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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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나오는 빛나는 요즘 어느 집에서나 볼 수 있는 아주 평범한 아이다. 엄마 아빠뿐만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삼촌 등등 온 집안의 가족들의 사랑을 가득 느끼며 자라는, 종종 그 사랑이 장난감으로 나타나면 함박웃음을 숨기지 못하는 그런 아이. 사실 이런 아이를 가진 부모들은 살살 머리가 아파온다. 첫째, 어느 순간 늘어나는 장난감이 감당이 되지 않는다. 장난감을 사 오는 그 마음이야 누구보다 잘 알고 감사하지만, 적지도 않은 금액의 장난감들이 쌓이기 시작하면 부모들에게는 둘 곳 없는 그 장난감이 골칫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 아이들이 사람 그 자체가 아니라, 선물을 더 기다리게 된다. 우리 아이들도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가자마자, 인사도 전에 '선물은요?' 하며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을 때가 있다. 이 얼마나 민망한 일인가.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어떤 장난감을 사든, 그리 오래 가질고 놀지 않는다는 것. 언제나 '새' 장난감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금세 싫증을 내고 끊임없이 '새' 장난감만을 찾는다. 그래서 이 동화책에 그려진 빛나의 가득 찬 장난감 장식장이 그리 낯설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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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똑같은 못난이 인형이 집에 있음에도 고운이의 상처 나고 낡은 못난이 인형에 질투를 느껴, 집에 와 멀쩡한 인형에 생채기를 내며 고운이의 인형처럼 만들려고 한다. 중학생이 된 오빠 어진이는 유치원생 동생 빛나의 마음을 읽어주며 어린 빛나가 이해할 수 있게 질문을 던진다.

"...... 처음에 네 거하고 고운이 건 똑같은 거였어. 똑같은 인형이 어떻게 고운이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인형이 되고, 우리 빛나 것은 가장 미운 인형이 됐을까?......"

결국은 마음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긴 시간 온전히 마음을 주면, 이 인형도 고운이 것처럼 예뻐질 수 있다고. 그제야 빛나는 밝은 얼굴로 오빠를 바라본다.


어른인 나 또한 가끔 빛나처럼 굴 때가 있다. 결혼식 준비를 할 때였다. 독일과 한국에서 두 번의 결혼식을 준비하던 나는, 인터넷으로 수많은 결혼식 사진들을 찾아보며, 누군가의 행복한 날을 마냥 부러워했다. 내 인생에서 오래오래 기억할만한 나만의 결혼식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보다, 어떤 드레스에, 어떤 장소에, 어떤 음식을 해야 하는지, 수 없이 많은 사진들을 찾아보며 그저 멋져 보이는 것을 따라 하기에 급급했던 것 같다. 결론은 어떤 것을 골라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엇을 골라도 실수를 한 것 같은 마음에 점점 더 우울해져 갔다. 그래서 나는 '결혼식'이라는 말을 들으면, 그날의 행복했던 순간들보다 그날을 준비하기까지 스트레스를 받았던 나 자신이 먼저 떠오른다. 지나고 보니, 거적때기를 걸쳤어도 행복했을 날이었다. 내가 평생 함께할 남편이 있었고, 우리를 축복해 주는 가족들과 친구들, 지인들이 기꺼이 시간을 함께 해 주었다. 내가 마음만 주었다면, 내가 선택한 모든 것들이 내 마음에 쏙 들었을 텐데, 더 좋은 것을 바라며 욕심을 낸 탓에 나 스스로를 너무 괴롭혔던 것 같다.




그렇다면 나의 '세상에서 제일 예쁜 못난이'는 무엇일까. 번뜩 머리에 떠오른 것은 나의 노트북가방이다. 10년 전, 남편이 피카드 (PICARD)라는 독일 브랜드에서 사준 것이었는데, 남들이 알아줄만한 값비싼 가방은 아니지만, 독일에서의 맞이했던 취직의 기쁨이 고스란히 담겨 들 때마다 기분이 좋은 가방이다. 평소에도 필요한 물건은 그냥 주머니에 쑤셔 넣거나 에코백에 담아다니는 내게, 이 노트북 가방은 거의 유일하게 들고 다니는 가방이었다. 벨기에까지 데려가 나의 모든 출장길을 함께했다. 출장지에 도착하면, 캐리어 위에 얹어진 이 노트북가방을 찍어 남편에게 보내 잘 도착했음을 알리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가방의 앞 뒤에는 커다란 스크래치들이 덕지덕지 생겼고, 가방의 테두리는 모조리 하얗게 닳아버렸다. 심지어 지퍼가 닳아 떨어지자 이제 자기의 기능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 이제 바꿀 때가 되었구나 하고 있었는, 어느 날 회사 동료가 '그 가방 어디서 샀어? 사이즈도 딱이고 깔끔한 게 너무 예쁘다.'며 브랜드를 물었다. 찾아봤더니 이제 비슷한 모델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사실을 알고 나니 '낡았으니 바꿔야지'하던 마음이 쏙 들어갔다. 지퍼야 두 개니 한쪽만 쓰면 되고, 스크래치도 내 눈에만 보이지 싶은 마음이 생겼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지. 덕분에 이 못난이는 나와 함께 조금 더 좋은 추억을 만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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