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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아이보다 더 현명할 것이라는 착각

『Fox & Son Tailers』, Paddy Donnelly

by 달하달하

패디 도넬리 (Paddy Donnelly)는 이든이와 이나 덕분에 알게 되었다. 아이들 학교에서 작가를 초대하는 행사가 있었는데, 그때 패디 도넬리가 직접 아이들에게 책도 읽어주고, 동화책을 만드는 과정 등을 소개해 주었다고 한다. 미리 구매한 책들에 사인도 받고 사진도 찍은 아이들은, 지금도 서점에 가기만 하면 패디 도넬리의 새 책이 나왔는지부터 찾는다. 인생 처음 만나본 작가라 신기한 것도 있겠지만, 패디 도넬리의 책은 우리 아이들, 특히 일곱 살짜리 이든이가 좋아할 만한 요소를 가득 담고 있다. 멸종된 동물 도도에 관한 이야기 『Dodos are not extinct (도도는 멸종되지 않았다)』, 손녀와 할아버지가 황금토끼를 찾아 떠나는 모험을 그린 『The Golden Hare (황금토끼)』, 작가의 고향인 아일랜드의 전설에서 영감을 받은 『The Vanishing Lake (사라지는 호수)』 이야기 등 흔치 않은 소재로 아이들의 궁금증을 잔뜩 자극할 만한 이야기들을 동화책에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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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은 『Fox & Son Tailers (여우와 아들 재단사)』라는 책이다. 정확히 말하면 '재단사 (Tailor)'가 아닌, '꼬리를 만드는 사람 (Tailer)'에 대한 이야기인데, 같은 발음이 나서 언어유희적으로 제목을 지은 것 같다. 주인공인 로리의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대를 이어 꼬리 만드는 일을 한다. 동물 손님들은 결혼식, 생일파티, 입학 첫날 등을 기념하기 위해 로리의 가게에 와서 꼬리를 맞춘다. 아버지는 손님들이 주문한 목적에 맞게, 정확한 수치의 꼬리를 만들어준다. 이에 싫증을 느낀 로리는 혼자 새로운 꼬리 모양을 만들어 내고 아버지는 이에 화를 낸다. 그런데 어느 날 까다로운 손님이 방문을 하고, 로리 아버지의 어떤 꼬리도 마음에 들지 않아 하다가 로리가 그린 꼬리를 보고는 마음을 뺏긴다. 그 후로는 아버지와 아들 모두 새로운 꼬리를 만들며 더 많은 손님을 맞이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가 된다.




처음 부모가 되는 순간은 그 누구도 잊지 못할 것이다. 작고 따뜻한 아이를 내 품에 안는 그 기분은, 분명 세상에서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작고 완벽한 생명은 처음 보았다. 곤히 잠든 아이를 보고 있으면, '이렇게 완벽하게 태어난 아이를 내가 잘 키울 수 있을까' 싶어 덜컥 겁이 났다. 상처 하나 없이 태어난 이 아이에게 작은 흠집이라도 생길까 봐 조심했던 그날들이 지나고, 초등학생이 된 이든이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궁금해, 끊임없이 물음표를 던져대는 아이로 크고 있다. 가끔은 이 아이가, 내 품에서 새근새근 자던 그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새로운 아이를 키우고 있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요즘 보면 이든이 머릿속에 자기만의 세계가 생기는 것이 보인다. 그래서 가끔은 '그런 게 왜 궁금해? 그런 생각은 왜 하는 거야?' 싶지만, 입 밖으로 뱉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한다. 그런 엉뚱함이 귀여울 때도 있지만, 이 아이의 일상을 규칙적으로 챙겨줘야 하는 엄마의 입장에서는 이 아이의 자유분방한 생각들이 가끔 귀찮게 느껴질 때도 있다.


어느 날 저녁, 여느 때처럼 침대에서 책을 읽고 잠에 들려던 이든이가 말했다.

"엄마, 오늘 학교에서 누가 나를 괴롭혔어. 운동장에서 나를 밀고 바닥으로 넘어뜨려서 입에 흙이 다 들어갔어."

"하지 말라고 했어? 선생님한테도 얘기하고?"

"응. 그런데 하지 말라고 해도 계속 쫓아왔어. 선생님이 없으면 또 해."

심장이 쿵 내려앉는 이야기였다. 갑자기 얼굴이 확 달아오르고, 두 손이 저릿저릿 저려왔다. 당장 누구에게 먼저 연락을 해야 하나, 내일 아침 일찍 학교를 가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침착한 척, 이든이와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무섭지 않았어? 내일 학교 가는 건 괜찮겠어? 그런 친구가 이든이 반에 있어서 속상하겠다."

"응? 아니야. 괜찮아. 나는 이미 좋은 친구들이 있잖아. 같은 반 (Classmate)이니까 같이 놀겠지만, 그 애랑 친구 (Friend)가 될 필요는 없어."

한 반에 열 명이 채 되지 않는 작은 학교에 다니는 이든이었기에, 같은 반 아이들은 모두 친하게 지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중에 한 명이 이든이에게 과격하게 군다니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이든이는 '그 애는 내 친구가 아니니, 괜찮아.'라고 말한 것이다. 그렇지. 같은 반이라고 모두 친구가 될 필요는 없지. 가끔은 사람관계에서 그런 선명한 선이 나를 지켜주기도 하지. '너는 내 인생에 중요하지 않으니, 나는 더 이상 너를 신경 쓰지 않겠어.'라고 마음먹으면 그 누구도 쉽게 나에게 상처를 줄 수가 없으니까 말이다. 무턱대고 당장이라도 싸울 기세로 머리를 굴리던 엄마보다, 자기 스스로 마음을 단단히 정리할 줄 아는 이든이가 훨씬 나았다.




사십이나 되고 보니, 꽤나 어른인 척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아는 양 굴 때가 있다. 아이들한테는 물론이고, 회사에서도 새로 들어온 신입들에게 '이건 이렇고, 저건 저런 거야.' 하며 모든 게 너무 당연하다는 듯 말한다. 그리고 누군가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이야기를 하면, 지레 '아니야, 내가 해 봐서 알아.'라는 식으로 말을 잘라버린다. 마음이 늙어간다고 해야 할까. 가끔 이렇게 변해가는 스스로를 깨닫게 되는 순간, 나 자신이 부끄럽고 싫어진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쉽지가 않다. 귀를 열고, 마음을 여는 것. '안 된다'라고 하기 전에, '한 번 해보자'라고 말하는 것. 어쩌면 내가 앞으로 평생 연습해야 할 것들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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