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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보물을 찾아, 오늘을 허비하는 우리들

『쿠란의 보물찾기』, 리사 모로니

by 달하달하

첫째인 이든이가 한 살이 될 때 즈음, 한국에서 가져온 한글책이 모두 동나 새로운 동화책을 찾고 있을 때, '북유럽 그림책'을 모아놓은 책 묶음을 찾게 되었다. 한국에서 동화책을 사려고 하면 대부분 전집으로 묶여있거나, 한 두 권씩 고르려고 해도 어떤 이야기가 좋을지 몰라 골라 담기가 어려웠는데, 부수도 많지 않고 다양한 작가의 특색 있는 글들이 모여있는 전집이라 아주 반가웠던 기억이 있다. 일곱 살이 된 이든이는 조금 더 글밥이 많은 책들을 시작했고, 네 살 난 이나는 이제서야 이 책들에 재미를 들이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요즘 이나의 최애는 『쿠란의 보물찾기』이다.


이 책에는 쿠란과 피간이라는 작은 동물이 나온다. 그림만으로는 정확히 어떤 동물인지 알 수 없지만, 쿠란은 쥐, 피간은 무당벌레 정도로 보이는데, 집에서 카드놀이를 하던 이 둘은 심심풀이로 보물 찾기에 나선다. 쿠란은 어디선가 좋은 냄새가 나는 노랗고 둥근 보물을 발견하고는 피간과 함께 그 보물을 집으로 들고 가려고 하는데, 너무 무거운 탓에 힘이 빠지고, 비까지 오는 상황이 되자 그 보물을 땅에 묻고 다음에 찾아가기로 한다. 둘은 비가 그치자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 보물을 꺼내기 위해 땅을 파는데, 아무리 파도 보물이 나오지 않는데, 지나가는 동물들에게 물어봐도 아는 사람도 없고, 그 친구들까지 다 힘을 합쳐 땅을 파 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보물 찾는 것을 포기한 순간, 우연하게 다시 그 보물을 찾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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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나오는 쿠란은 고집이 센 욕심쟁이다. 땅에 묻힌 보물을 찾기 위해 열심히 땅을 파는 사이 만나게 된 친구들이 자신의 보물을 가져갈까 봐 끊임없이 경계를 한다. 함께 땅 속의 보물을 찾기 위해 함께하던 친구들이 잠시 쉬었다 하라고 해도, 쿠란은 끝끝내 땅 파는 데만 열중하다 결국 삽이 부러 지고 나서야 보물 찾기를 멈춘다. 그리고 나서야 보물은 사실 바로 옆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데, 이 이야기를 읽다 보니 이 쿠란이란 녀석이 꼭 나 같다고 느껴졌다. 아이들이 '엄마 같이 놀아요.' 하면, 음식을 준비하거나 청소를 하거나 나는 언제든 더 중요한 일들을 하느라 '안 돼'라는 말을 먼저 내뱉었다. 사실 조금 쉬었다 해도 되는데 말이다.


어쩌면 대부분의 어른들이 쿠란 같은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살아가는데 굳이 필요하지 않은 보물을 찾아 헤매느라, 오늘의 행복 따위는 쉽게 접어둔다. 꼭 그 보물이 없으면 살지 못할 것처럼.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는 그 보물 따위가 없어도 지금까지 잘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꼭 미래의 '찾을지도 모를' 그 보물이 나의 행복을 장담해 줄 것 마냥, 오늘의 소소한 행복들을 너무 쉽게 잊고 산다. 피간이 작고 작은 진딧물 정도에 행복함을 느끼고, 보물을 찾기 위해 땅을 파면서도 종종 카드놀이를 하며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과는 사뭇 비교가 된다. 피간이야말로 '소확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 캐릭터이다.


이 이야기를 다시 되짚어 보면, 쿠란은 이미 이야기의 초반에 보물을 찾았다. 다만 그 보물을 혼자 간직하고 싶어 집으로 옮기다, 너무 무거워 땅에 숨기게 되면서 그 보물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그 보물을 다시 찾게 되고 결국에는 자기를 도와준 친구들과 그 보물을 나누며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처음 보물을 찾자마자 그 자리에서 맛있게 먹었다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도 좋으니 땅에 묻지 않았다면, 쿠란은 조금 더 일찍, 그리고 조금 더 편하게 그 보물을 누릴 수 있었을 텐데, 그 어리석음마저도 우리네 이야기 같아 씁쓸해졌다.




이나가 이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보물'이 나와서이다. 이 책을 통해 보물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된 이나는, 이 세상에 '보물'이라 부를만한 대단한 것이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감에 신이 나나보다. 그런데 나는 이나가 쿠란처럼 대단한 보물을 찾기 위해 시간을 허비하기보다, 피간처럼 작아도 나에게는 소중한, 그리고 무엇보다 내 가까이에 있는 보물을 매일매일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마음을 조금만 연다면, 지금이나 옆에도 무궁무진하게 많은 보물이 숨겨져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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