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raffes can't dance』, Giles A. & Guy P
이든이와 이나의 학교는 모든 학생들이 매주 도서관에 들러, 한 권의 책을 빌려 읽는다. 우리 아이들은 아직 글을 잘 못 읽어 그림으로만 내용을 유추해서 골라오는데, 그럼에도 꽤나 좋은 책들을 많이 빌려와, 매주 아이들이 가져오는 책을 기다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Giraffes can't dance (기린은 춤을 못 춰)』라는 제목의 이 책도 그렇게 만나게 된 책들 중 한 권이다. 이 책은 어느 아프리카 정글에 사는 기린 제라드 (Gerald)에 대한 이야기이다. 긴 목, 긴 다리, 그리고 우습게 구부러진 무릎을 가진 제라드는 춤을 못 춘다. 제라드가 사는 정글에는 매년 댄스파티가 열리지만, 제라드는 다른 동물들의 멋들어진 춤을 부러움의 눈길로 바라볼 뿐이다. 댄스파티가 끝나고 홀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제라드는 밤하늘을 밝게 비추는 아름다운 달을 바라보며 외로움을 달래는데, 옆에 있던 귀뚜라미가 말을 건다.
"...... 남들과 다르다면, 그냥 너만의 노래를 찾으면 돼. (...... sometimes when you're different, you just need a differnt song.)"
귀뚜라미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네가 원한다면, 무엇이든 음악이 될 수 있어. (Everything makes music, if you really want it to.)"
제라드는 용기를 내어 음악에 몸을 맡기고, 귀뚜라미가 들려주는 바이올린 소리에 맞춰 자연스레 몸을 움직인다. 기다랗고 깡마른 제라드의 몸짓은 남들과는 달랐지만, 그렇기에 그 누구도 따라 하지 못할 아름다운 춤을 만들어 낸다.
어느덧 내 인생의 사분의 일이 넘는 시간을 외국에서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한식을 주식으로 하는, 평범한 한국인으로 살고 있다. 불편한 점도 많지만, 내 나라를 떠나 살면서 좋은 점 하나는,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넓어졌다는 것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행복하게 사는 법이 꼭 정해진 것처럼 앞만 보고 달려갔는데, 한국을 떠난 후 많은 사람들은 각자 다른 모양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고 있었는 것을 깨달았다. 대학을 가지 않아도, 남들 보기에 좋은 직업을 가지지 않아도, 결혼을 하지 않아도, 혹은 아이를 가지지 않아도, 모두 자기만의 행복이 무엇인지 알고 그 안에서 만족하며 사는 것이다. 누군가의 시선 따위보다는, 내 마음의 소리가 중요한 삶. 외국에서 십 년이 넘게 살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그런 삶을 살고 있지는 못하다.
이 책을 아이들과 함께 읽으며, 아주 짧게 마음속으로 기도를 했다. '우리 아이들이, 자기에게 맞는 노래를 찾고, 그 노래에 맞게 자유롭게 춤추며 살게 해 주세요.'라고 말이다. 나는 그렇게 살아오지 못했지만, 자기만의 행복의 모양을 찾아 나서기를 바란다. 누구에 틀에도 맞추지 않고, 누군가의 소리에 흔들리지 않고, 그렇게 꿋꿋이 본인의 마음의 소리를 따라가는 삶을 살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너무 늦지 않았다면, 나도 이제 내가 있는 곳의 틀에서 벗어나, 원래 내 모양을 좀 살펴보며 살려고 한다. 글을 쓰고 싶으면 쓰고, 다른 일을 하고 싶으면 하고. 그래서 나는 오늘도 끄적끄적 내 생각들을 적어 내려간다. 남들이 뭐라건,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