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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가질수록, 더 외로워지는 우리

『The whale who wanted more』 Rachel & Jim

by 달하달하

올 여름 벨기에에서 독일로 이사를 오며, 우리는 집안에 쌓여있던 잡동사니들을 모조리 꺼내 정리를 시작했다. 남편과 내 짐들은 필요의 유무에 따라 정리하면 되었기에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들의 물건들이었다. 벨기에에 올 때만 해도 한 살이 갓 지난 이든이 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이나까지 유치원을 다닐 만큼 컸으니, 아이들이 학교에서 만들어오는 작품만 해도 아이들 몸 만한 상자를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거기다 아이들이 지금보다 작을 때 입었던 옷들, 장난감들은 계속 정리를 해왔다고 생각했는데도, 창고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여태껏 쌓여있던 상자들을 볼 때마다 속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모른척하고 지나갔었는데, 더 이상 미룰 수없다고 생각한 나는 물건을 모조리 꺼내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든이의 걸음마를 도와준 움직이는 곰인형, 종이가 해지도록 읽어줬던 아기책, 이나가 너무나도 예쁘게 입었던 한복 등 차마 내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결국 하루를 모조리 다 쓰고도, 물건은 크게 줄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레이첼 브라이트의 『The whale who wanted more (욕심 많은 고래)』에도 나와 비슷한 친구가 나온다. 험프리 (Humphrey)라는 이름의 이 고래는, 깊은 바닷속을 누비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고 모은다. 온몸을 둘러쌀 만큼 짐이 많지만, 어딘가 더 반짝이고 좋은 물건이 있을 것 같아, 눈을 뜨자마자 바닷속을 샅샅이 뒤진다. '어딘가, 무언가 좋은 것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더욱더 물건에 집착하지만, 그럴수록 험프리의 공허함은 커져만 간다. 그러다 조그마한 꽃게 크리스탈 (Crystal)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험프리.

"너는 항상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싶어 하지. 도대체 그 것들을 왜 원하는 거야? (You are the whale who always wants more but what are you really wanting it for?)"

이 질문을 들은 험프리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그리고 말한다.

"나는 그냥 뭔가 마음이 꽉 채워지고, 행복해져서, 내가 완전하게 느껴졌으면 좋겠어. (I think my goal was to fell all filled-up and, well, happy and... WHOLE.)"



이 책은 물론 이야기 자체도 좋지만, 깊은 바닷빛의 그림들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고래의 공허함을 함께 느끼는 묘미도 빼놓을 수 없다. 반짝이는 보물들을 온몸에 가득 감고 다니지만, 한없이 슬픈 눈을 한 험프리를 보고 있자면, 이 덩치 큰 고래를 꼭 안아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안쓰럽게 느껴진다. 남들은 욕심쟁이라 부를지 몰라도, 이 외로운 고래는 그저 행복해지고 싶은데 그 방법을 모를 뿐이다. 크리스탈은 이런 험프리에게, 행복은 더 가질 때가 아닌, 나눌 때 찾아온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오래된 기억과 함께, 본인이 나눌 수 있는 무언가를 찾게 된 험프리는, 자기 몸을 칭칭 감고 있던 물건들을 다 내려놓고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가지게 된다.




이삿날이 얼마 남지 않고서야 나는 쌓여있던 물건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정말 소중한 몇 가지를 빼놓고는, 모두 사진을 찍고 나눔 박스에 담았다. 그중에서도 꽤나 오래 망설였던 것은 아이들의 작아진 한복이었다. 한국에 갈 때마다 사촌언니가 정성껏 골라 사주고, 명절마다 고이고이 이쁘게 입혔던 그 한복들. 하지만 결국에 다시는 입히지 못할 옷들이었다. 그래서 큰 마음을 먹고 온라인 한인 커뮤니티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가져와 명절마다 잘 입혔던 옷들입니다. 이 옷들을 입고 귀엽게 웃던 아이들 모습이 생각나 계속 가지고 있을까 하다, 또 다른 가족들에게도 좋은 추억이 생기면 좋을 것 같아 무료로 나누려 합니다. 아, 대신 잘 입히시고 작아지면 다음에 또 다른 가족들에게 나누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글을 올린 지 채 몇 분이 되지 않아 작아진 한복은 새로운 주인을 만났다. 깨끗이 접어 포장을 하고, 소포를 보내면서 홀가분한 마음과 함께 뿌듯함이 가득 차 올랐다.



"... 사실 우리는 조금만으로도 충분하니까. (... since we all need so little to have quite enough.)"

험프리가 불쌍한 것은 이 고래가 너무나도 나, 우리 같은 모습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더 좋은 것, 더 완벽한 것이 있을 것 같아서, 우리는 끊임없이 사고 모은다. 처음에는 반짝임에 반해 가지고 싶다가도, 막상 가지고 나면 언느샌가 그 빛은 서서히 사라져버리고, 가지고 나면 행복할 줄 알지만, 마음은 점점 더 비어만 간다. 알면서도 멈추는 게 쉽지가 않다. 그런데 가끔이라도 '내가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은 무언가' 혹은 '내가 나눌 수 있는 무언가'를 생각할 수 있다면, 우리도 험프리처럼 이 지독한 공허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출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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