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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가정법

『Be brave little penguine』, Giles & Guy

by 달하달하

아이를 낳고 나면 제 나이를 잊는다고들 한다. 나 역시 그랬다. 첫째가 태어나고 아이가 세상에 온 날을, 달을, 해를 세며 살지만, 정작 누군가 내 나이를 물어오면 머릿속으로 한참 계산기를 두드려야 한다. 그러다 어느덧 마흔이 되었다. 열 살이 언제였는지는 기억도 안 나고, 스무 살은 마냥 설렜고, 서른이 되면 나도 진짜 어른이 될 줄 알았다. 매년 나이의 앞자리가 바뀔 때면, 굉장히 큰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설렘과 두려움으로 맞이했던 것 같은데, 마흔은 아무런 기대도, 준비도 없이 찾아왔다. 사실 39살의 나와 40살의 내가 다를 것은 없지만, 끝이 0으로 딱 떨어지는 나이가 되니, 새삼 나를 돌아보게 된다. 지난 사십 년 동안 나는 어떻게 살아온 걸까, 앞으로 40년은 또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최근 들어 부쩍 '나이가 들었구나'하고 느끼는 부분이 있다. 예전에는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오래 생각하지 않고 덥석 시작하고 봤던 것 같은데, 요즈음에는 생각이 많아진다. '해봐서 알아, 이건 안 될 거야.' 혹은 '그렇게 노력해서 뭐 해.' 하며 무언가를 시작도 하기 전에 냉소적인 평가부터 내리고 만다. 그래서 머릿속에 '해야 될 이유'보다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먼저 적어 내려간다. 옆에서 누군가 조언을 해도, 겉으로는 예의 바르게 듣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쳇, 네가 뭘 알아.'라며 가볍게 무시해 버린다. 동화책에 대한 글을 써 내려가는 것도 그랬다.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노트북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왜 그랬을까?




나는 그 답을 『Be brave little penguine (용기를 내, 아기 펭귄)』에서 찾을 수 있었다. 얼음 바다가 끝나는 저 먼 남극에 핍핍 (Pip-Pip)이라는 아주 작은 펭귄이 살고 있었다. 다른 펭귄들이 자유롭게 바다를 누비며 수영을 하는 동안, '겁쟁이' 핍핍은 그 모습을 그저 슬픈 눈으로 바라만 보고 있었다. 물을 무서워하는 펭귄이라니. 핍핍의 부모님은 부디 핍핍이 물에 들어갈 수 있기를 바랐다.

'... 엄마, 물속이 너무 깊고 어두우면 어떡하죠?... 물속에 괴물이 내 냄새를 맡고 날 먹어버리면요?... (... Mummy, WHAT IF I get in and it's just too dark and deep for me?... WHAT IF there are monsters there who smell me from their den, and they slither up and eat me?...)'

겁에 질린 핍핍이 엄마에게 말한다.

'... 지금부터 이렇게 생각해 보는 거 어때...? (... WHAT IF now you try to think of it like this...?)'

엄마는 걱정 어린 핍핍을 위로하며, 물속에서 친구들을 만나 놀 수도 있고, 그 물속이 밝고 따뜻할 수도 있다고 말해준다. 오들오들 떨며 물가로 걸어간 핍핍은 엄마의 말에 용기를 내어 물속으로 뛰어들고, 엄마가 찾으러 들어갈 때까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그 바다를 즐긴다.



이 귀여운 아기 펭귄은 엄마의 말을 귀담아듣지만, 나는 사십이 된 고집불통이라 남의 말을 그리 잘 듣지 않는다. 심지어 엄마의 말이라 해도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 둘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것. 핍핍은 한 번도 들어가 보지 않은 바다가 두려웠지만, 나는 이미 경험으로 알게 된 것들 때문에 두렵다. 실패의 쓴 맛도 알고, 현실의 냉혹함도 알기에, 다시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이 예전보다 더 무섭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엄마의 다정한 가정법이 아닌, 핍핍의 겁쟁이 가정법을 마음속으로 무수히 되뇐다. 그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 잘 알면서도 말이다. 경험이 많아지면 더 지혜로워질 줄 알았는데, 우습게도 겁만 더 많아진다.


이제 내 사전에 '만약에 (WAHT IF)'는 부정적인 의미만 담아야 하는 문법으로 정의가 되어버린 걸까. 억지로 밝은 희망을 담으려 해도, 쉽게 그 문장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더 노력해 보기로 했다. 나이 사십에 이렇게 마음을 접기 시작했다면, 앞으로 사십 년이 더 지나면 나는 정말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하는 안쓰러운 노년이 되어버릴지도 모르니까. 내가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를 알았고, 그 방향이 잘못되었다면, 지금부터 조금씩 방향을 틀면 그만일 테다. 아직 사십밖에 안 되었으니, 매일매일 하루의 한 문장 정도는 나에게 용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가정법을 써봐야겠다.




여행을 다녀올 예정입니다. 잠시 쉬었다 다시 연재를 이어갈까 해요. 부족한 글 읽어주심에 감사한 마음 전하면서, 11월 중순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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