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좋게 놀 수 있을까?』, 하이거우, 조세프 리, 이지수
독일에 와서 짐을 다 풀기도 전에, 남편이 대만으로 발령을 받았다. 사실 이전부터 대만에 갈 기회가 있다는 것은 알았으나, 결정이 일찍 나지 않아 우선 본사가 있는 독일로 돌아오기로 했던 것인데, 시기가 참 얄궂게도 이삿짐을 풀고 있는 이제야 결정이 난 것이다. 망설여지는 부분이 많았지만, 우리는 아이들이 아직 어릴 때, 우리가 아직 젊을 때 새로운 곳에서의 삶을 이어나가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결정을 하고 나니, 대만이라는 나라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알면 알수록, 우리나라와 참 닮은 구석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 나라 모두 일본의 지배를 받았던 것도, 그 후 우리는 북한과, 대만은 중국 본토와 현재까지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최근에 와서는 한국의 삼성과 대만의 TSMC가 세계 반도체 시장을 꽉 잡고 있는 것까지도 비슷했다. 우리가 대만에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자, 일찍이 대만을 여행해 봤거나 그곳에서 잠시 살아봤던 주위의 지인들은 하나 같이 입을 모아 대만이 살기 좋은 곳이라 칭찬했다. 나는 안도하면서도, 혼란한 세계정세와 함께 중국의 움직임에 대한 우려를 무시할 수 없었다.
『사이좋게 놀 수 있을까?』는 아주 옛날 하늘과 땅에 주인이 없었던 시절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모든 것이 평화로웠던 그곳에, 사람들이 집을 지으며 하늘에도 땅에도 '자기 것'이 생겨났다. 나란히 집을 가지고 있던 말라깽이 씨와 뚱보 씨도 붙어 있는 땅에 선을 그으며 서로 자기 땅이라 우기며 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끝내 하인들에게 무겁고 두꺼운 옷을 입혀 높다란 벽을 만들었다. 그러다 어느 날 공놀이를 하던 뚱보 씨 아이의 공이 말라깽이 씨의 벽 쪽으로 넘어가고 만다. 하인들은 여전히 벽을 만든 채 움직이지 않는데, 그 사이로 말라깽이 씨의 아이가 공을 넘겨주고 둘은 함께 공놀이를 하게 된다. 이 아이들로 인해 높다란 벽처럼 보이던 하인들도 하나 둘 움직이기 시작하고, 그렇게 더 이상 벽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이 책의 지은이가 대만 사람이어서였는지, 아니면 '이야기의 힘으로 세상의 모든 장벽을 무너뜨릴 수 있기를 바라며 이 글을 썼다'는 지은이의 글을 봐서였는지,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대만과 한국, 더 나아가 수많은 싸움과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우리의 현재를 떠올렸다.
벨기에 워터루 (Waterloo)에 살 때, 손님들이 오면 종종 워터루 전쟁 기념관에 들르곤 했다. 나폴레옹의 마지막 전투라는 역사적 의의도 있지만, 야외에 있는 언덕 위 사자상 옆에서 보는 전경이 아주 멋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워터루 전쟁이 있던 곳을 자주 방문하니, 이든이가 자연스레 '전쟁'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기 시작했다.
"엄마, 전쟁은 왜 하는 거야?"
꽤나 갑작스러운 질문인 데다, 겨우 네 살 정도밖에 안 된 아이에게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몰라 한참 생각하다 대답했다.
"땅을 더 가지려고 하는 거야."
그 말을 들은 이든이가 또 물었다.
"땅은 내가 먹고 잘 수 있을 만큼만 있으면 되잖아. 더 많이 가져서 뭐 해?"
"땅이 더 많으면 먹을 것도 더 많이 생기고, 힘도 더 세질 수 있으니까."
"그렇다고 사람을 죽여?"
할 말이 없었다. 이든이가 이해한 그대로, 전쟁은 말도 안 되는 짓이었으니까. 우습게도, 그리고 잔인하게도 우리는 아직도 그런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 어린아이가 아는 것을, 우리 어른들이 모를 리가 없을 텐데도 말이다.
아이들 학교에서 우크라이나 가족들을 만난 적이 있다. 우리와 같이 평범한 일상을 살다, 어느 날 갑자기 난민 신세가 되어 벨기에에서 도움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 아이들에게 이 세상은 무지갯빛처럼 아름답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차마 설명하기 어려운 그림자들이 너무나 많다. 주황색과 분홍색으로 아름답게 그려진 이 그림책에 담긴 이야기의 이면이 그렇듯이. 언젠가 아이들의 눈에 '말이 되는' 세상이 되는 날이 올까. 언젠가 우리 모두가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살게 될 날이 올까. 부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