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하달하 Apr 12. 2017

엉터리 반성문

반성의 흔적이라고는 1%도 없는 어머니 전상서

오빠와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때, 엄마는 일주일에 천 원 정도를 용돈으로 주셨다. 오빠가 나보다 네 살이나 많았으니 오백 원 정도는 더 줘도 됐을법한데, 오빠는 큰 불만 없이 어머니가 주시는 만큼을 감사히 받고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용돈이 생길 때마다 그 돈으로 학교 앞 문방구로 달려가 불량식품을 잔뜩 사 먹었단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엄마가 준 돈 남았어? 용돈 더 필요해?'라고 물어보면, 오빠는 늘 넉넉하다며 필요 없다고 하는데, 나는 어느새 다 써버리고는 용돈이 모자라다고 했단다.


엄마는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즈음 이 이야기를 해주시며,

"어떻게 한 배에서 나왔는데 이렇게 다르니. 신기하단 말이야."

하시고는 새삼스럽게 오빠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셨다.


내가 생각해도 오빠와 나는 식성에서부터 잠버릇까지 무엇하나 비슷한 것이 없다. 국의 건더기만 건져먹는 오빠와 국물 먼저 뜨는 나. 닭다리나 껍질을 좋아하는 오빠와 가슴살만 먹는 나. 다행히 식성이 겹치지 않아 먹을 것으로 싸울 일은 없었지만, 성격이 다르다는 말은 사소한 것 하나에도 싸울 일이 많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런 우리 둘에게도 비슷한 면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우리의 어릴 적 반성문을 보고 난 뒤였다.



1996년의 어느 날
아들의 반성문

... 저는 제대로 생각해서 행동하는 것인데 참 괴롭습니다.
제가 이유를 말씀드리는 것을 어머니께서 옳고 그릇되게 만드실 수 있습니다.
저는 어머니께 감추고 싶은 것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중 3, 제가 생각해도 참 힘드는 군요.
다시 한번 죄송...


20년 전에는 '중2병'이라는 말이 없었다지만, 우리 오빠는 분명 극심한 중2병을 앓고 있는 중3이었음에 틀림없다. 죄송하다는 말은 들어있지만, 오빠의 글 어디에도 반성의 기미는 보이지가 않는다. 어머니께 진실을 고했음에도, 엄마가 선과 악을 임의대로 판단했다는 것에 대한 분노만이 가득하다.


1996년 7월 26일
딸의 반성문

엄마 죄송해요.
전에 돈을 헛되게 썼을 때 반성문을 쓴 후, 다시는 쓰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이렇게 되고 말았어요.
해야 되는 건 생각 안 나고, 안 해도 되는 건 안 시켜도 잘 하죠.
저의 덜렁되는 성격 때문에 팥도 쏟고 물도 그냥 내버려 둔 것 같아요.
저도 엄마 생각을 알고 있긴 해도, 저희 세대에는 당연한 일이나 별거 아닌 일 밖에 되지 않아요.
또 엄마는 지금의 우리들처럼 조금은 소심하고 냉정하지 못하신 것 같아요.
무조건 제 잘못이라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정신적인 고통 때문에 반성문을 쓰게 만든 엄마의 잘못도 아주 조금, 조금은 있다는 말입니다.

(파이차트 등장, 약 95% 내 잘못, 나머지 엄마 잘못)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죄송합니다.

제가 반성문을 쓴 이유는?
1. 잘 하겠습니다.
2.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3. 죄송합니다.
다음부턴 진짜루 반성문 안 쓰게 되도록 노력할게요.


나는 고작 초등학생이었지만, 중학생이던 오빠에 비해 매우 짜임새 있는 글을 선보이고 있다. 기승전결이 분명하며, 차트나 열거를 통해 글의 요지를 잘 전달하고 있다. 또한 그 시대 아이들의 보편적인 성향을 예로 들어 어머니께서 간과할 수도 있었던 점을 부각함과 동시에, 어머니의 감정적인 대응에 대해 부드럽게 지적을 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지금 컨설팅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 떡잎부터 보였던 나의 일목요연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하하하.


저녁을 먹으며 남편에게 나의 반성문을 읽어주었다.


그러자 남편의 반응은,

"이게 반성문이라고?"

짧은 한숨.

"그럼 우리 애들도 저런 반성문을 써 오겠네. 에휴."


그렇다. 나의 글솜씨에 빠져있을 때가 아니었다. 미래의 내 아이들이 나에게 저런 반성문을 제출한다면, 엄마로서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니겠는가. 머리 끝까지 화가 났으니 저렇게 반성문을 쓰라고 방으로 들여보내셨을 텐데, 어머니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글을 써갔으니. 저 글을 읽고 2차로 몽둥이를 들지 않은 우리 엄마는 천사가 아니었을까. 나도 모르는 사이 불효를 저지른 내 자신이 미워지지만, 그럼에도 20년이 흘러 저 반성문이 엄마에게 함박웃음을 가져다 드리고 있음에 스스로 작은 위로를 삼아 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