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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하달하 Mar 23. 2017

나는야 못난이

엄마 아빠의 추억놀이

오랜만에 서울로 놀러 온 엄마와 내 방 침대에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살포시 잠이 들려던 찰나,

"이렇게 큰 처자가 내 뱃속에서 나왔다니."

150센티가 겨우 넘는 엄마가 165센티의 딸을 토닥이며 말했다.


"다시 들어갈까?"

하고 말했더니,

"아이고,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하신다.


엄마는 8월 한여름에 4킬로가 넘는 나를 뱃속에 넣고 다니느라, 한걸음 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찔끔찔끔 눈물이 다 나셨다고 한다. 거기다 예정일이 지나도록 밖으로 나오지 않는 나를 뱃속에 품은 채, 가게일이며 집안일을 하느라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하실 때면, 나도 모르게 엄마 얼굴 보기가 죄송해지곤 한다.



할머니를 통해 전해 들은 아빠와 나의 첫 만남은 더 인상적이었다.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구릿빛 피부에 완벽한 머리스타일, 그리고 또렷한 이목구비를 자랑했던 오빠와 달리, 엄마 말을 빌리자면, 밀가루 반죽같이 생겼던 나의 신생아적 얼굴에 아빠는 적지 않게 당황을 하셨단다. 산부인과에서 그런 나를 처음 본 아빠의 반응은 '내 애가 맞냐', '정말 딸이 맞냐', 그리고 앞날이 험난할 것 같으니 '소주 한 잔 하고 오겠다'가 전부였다고 한다.


엄마와 아빠의 기억 속에 오빠는 '남양분유 표지에서 튀어나온 애'라고 불렸을 정도로 귀여운 아기인 반면, 나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 '먹는 것'과 연결이 되어있다. 기차여행을 갈 때면 매점 카트가 지나갈 때마다 먹을 것을 사달라 조르는 통에, 아예 열차 승무원 아저씨가 우리 가족 옆에 카트를 대놓고 기다렸다고. 또 TV에 먹을 것과 관련된 광고가 나오면 침을 줄줄 흘리며 쳐다보다, 그 광고가 지나가고 나면 땅이 꺼져라 엉엉 울어댔다고 한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릴 적 이야기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사진마다 손에 과자를 꼭 쥐고 있는 내 모습이 심심치 않게 보이는 걸 보면, 부모님이 거짓말을 하시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하지만 내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일화도 있다. 부모님이 가게에서 일하는 동안, 손님들이 있는 테이블 근처에서 놀고 있던 나.


꼬물꼬물 조그만한 몸에 빵빵한 배를 자랑하던 나를 본 한 손님이,

"아이고, 뭘 그리 많이 먹었길래 배가 볼록 나왔어. 꽃돼지네, 꽃돼지."

라고 말하자 엉엉 울며 엄마를 불렀단다.


그래서 엄마가 왜 우냐며 달래니,

"나는 꽃돼지가 아니라 똥돼지야. 으앙."

하면서 더 크게 울더란다.


어린 나이에 꽃이 뭔지 똥이 뭔지 모르고, 그냥 자주 들어본 똥돼지라는 말이 더 좋은 것인 줄 알고 울어댄 것 같은데, 엄마는 내가 포항에 들릴 때마다 이 이야기를 꺼내신다. 이번에는 남편과 같이 아침밥을 먹으며 이 사건을 꺼내시는 바람에, 졸지에 외국인 신랑 앞에서 '똥마누라'가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남편은 나의 못난이 사진을 수집하는 고약한 취미가 있다. 처음 우리 집에 인사를 온 날, 나는 으레 나의 어여쁜 사진을 골라 보여주며 자랑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매의 눈을 하고 내 앨범을 샅샅이 뒤지던 남편이, 수박 모형을 머리에 쓴 우스운 사진 하나를 찾아내더니 배를 잡고 뒹굴며 웃어대는 것이 아닌가. 그 앨범을 수십 번은 펼쳐보았지만, 내 기억 속에는 남아있지도 않은 이상한 사진 하나를, 남편은 휴대폰으로 찍어 독일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공유하며 내 약을 올렸다. 잔뜩 기분이 상한 내가 남편에게 말했다.


"어이, 이 모습이 미래에 만나게 될 네 딸의 얼굴이야!"


그럼에도 남편은 더 크게 깔깔거리며,

"괜찮아, 내 딸도 이렇게 놀리면 돼."

라며 받아쳤다.


나는 더 약이 올랐다. 그리고 생각했다. 4.2킬로로 태어난 아빠와 4.0킬로의 우량아였던 엄마 사이에서 태어날 우리의 아이만큼은 나와 같은 놀림을 받지 않기를. 아들이든 딸이든 장난꾸러기 아빠가 끊임없이 못난이 사진을 찍어 남겨줄 테니, 부디 배우자만큼은 자신을 예뻐해 주는 착한 사람을 만나기를 :D





Ugly Me


My parents enjoy looking at my baby pictures and talking about my stories that I can't remember. Opposite of my good-looking baby brother, I was just a chubby baby who likes to eat more and more. My mom said that whenever we took a train for travelling, the food cart was waiting beside me because I kept calling the guy to bring me new food. I don't want to believe the story but many of my baby pictures demonstrate that it is true.


Even my husband thinks I was a funny-looking child. When he visited my parents, he saw my album and found a hilarious photo of me wearing a water melon hat and holding a big water melon in my arms. I didn't even remember that I have such a picture but he captured it and shared with our german family and friends. So I got angry and said, "It's the face of your future daughter!" However, he kept laughing and said, "That's okay, then I can make fun of her, too." Oh, my poor ba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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