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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li record Oct 30. 2022

나는 아직도 바(BAR)가 어렵다.

단골 바(BAR)가 생기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바에 방문하는 것을 어색해한다.
첫 방문이라면 특히나 옷차림부터 신경을 쓰게 된다.
사실 어느 바에 가느냐에 따라 옷차림에 힘을 주게 되는데 나 또한 그랬다. 단골 바(BAR)라 할 수 있는 곳이 생긴 지금에 와서야 정말 편안한 차림으로 방문하는데, 당연하지만 자주 가는 곳이라면 더욱이 발걸음이 가볍다.

하지만 옷차림을 떠나 처음 방문하는 곳에서는 아직도 얼음이 되곤 한다. 워낙 낯가림이 심한 편이라 그런지 굳이 바 테이블에 앉고 싶어 하면서도, 굳이 바텐더 분들과 한마디 섞고 싶어 하면서도 잔을 들어 넘기는 것조차 부자연스러워지는 것이다.


나처럼 이렇게 소심한 손님이 또 있을까 싶은 순간이 오면 이곳의 문을 연 것이 후회되기까지 한다.

그래도 요즘에는 많이 나아진 이다.

얼마 전에는 모처럼 히스 씨와 새로운 곳에 가보기로 마음을 먹고 평소 눈여겨보던 곳에 찾아갔더랬다. 집에서도 그리 멀지 않고 위스키 라인업도 괜찮고 가격도 합리적이었다. 그러니까 꽤나 괜찮은 편이었다.


단점이라면 왠만해선 가지 않는 번화한 거리에 있다는 것과 공간이 협소하다는 거였는데, 그럼에도 우리에겐  굉장히 메리트가 높은 곳이었다.

 

붐비는 곳의 붐비는 업장이다 보니 역시나 바 테이블은 자리가 없었다.

그나마 테이블 자리가 있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여서 조금 아쉽지만 우리는 뒷 쪽에 있는 테이블에 자릴 잡았는데, 정사각형의 작다할 수 있는 다리가 꽤 높은 테이블이 흔들거리는 게 너무나 신경 쓰여서 팔을 올려놓기가 무서웠다.

또 위에는 인조 장미꽃이 꽂혀있는 맥켈란 빈 병이 넘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까지 들어서 도무지 맘을 편하게 먹을 수가 없었다.

사실 문제가 될 정도가 전혀 아니었는데 말이다.


집에 와서는 되려 안절부절못하고 궁시렁거렸던 게 부끄러워져 그 모습을 사장님이 눈치챈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어쨌든 이런 성격을 본인도 잘 알고 있기에 머지않아 조금은 마음을 놓아보기로 하고, 진열장의 술들과 인테리어 등에 눈을 돌리면서 마음을 진정시켰다.

어느샌가 불안했던 테이블에 팔을 접어 올려놓고는 드디어 술 잔에 집중한다.


다들 아무렇지 않게 지나갈 것들을 나는 왜 이렇게 신경을 쓰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여기저기 술 집들을 돌아다니면서 착한 술쟁이들을 만나 즐겁게 지내고 있는 거에 감사하다.

핸드폰 카메라를 한 바퀴 돌리고 나서야 분주하신 사장님에게 주문을 할 수 있었다. 우리는 바 테이블 자리가 생기면 옮기고 싶다고 했고, 첫 잔을 다 마시기 전에 기쁘게도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


바 테이블의 장점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바텐더와 좀 더 많은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기회를 그냥 지나친다면 술쟁이가 아니지.


그런데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사실 우리가 떠오르는 질문들을 그들은 분명 수도 없이 들어봤을 것이다. 아마 지겨울 수도 있다.

그래우리는 오만가지 생각들을 하다가 결국 그 질문들을 꺼내본다. 젠장.


나는 너무나 소심한 사람이기 때문에 먼저 말을 거는 일이 거의 없다. 바텐더 분들이 건네는 흔한 인사말에 대답하는 것조차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을 정도로 주눅이 들어있었던 사람이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정말 많이도 컸지...


그저 앉아서 술을 마시다 보면 머지않아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고 가는 일이 생긴다. 그냥 흐름에 맞는 자연스러운 이야기를 꺼내면된다.


사실 말이 쉽지. 새로운 곳에서의 나는 아직도 목소리가 기어들어가고 생각나는 이야깃거리가 있어도 입 밖으로 꺼내기까지가 험난하다. 능숙하게 대화를 이끌어내는 너무나도 부러운 사람들을 만날 때면 대화의 기술같은 게 있냐고 묻고싶다.


차라리 입을 쉽게 떼지 못하는 것이라면 시간이 해결해줄 일이지만 잔을 넘기며 목각인형처럼 꺾어지는 목에서는  경련이 일어나는 건지. 


이렇게 멋진 곳에 앉아있으면 멋지게 즐겨줘야 하는데 참으로 낯부끄러운 일이다. 이런 나를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거라 믿고싶다.


부디 이 글을 읽는 이들 중에 나만큼이나 어색한 이있기를 조금은 기대해본다.


그날의 그곳은 직원이 아파서 나오지 못 했다면서 다른 날 보다 특히 바쁘다며 진땀을 빼시는 사장님과 얼큰하게 취한 손님들. 그리고 그보다 더 과하게 신난 옆 테이블이 인상 깊었다. 나이프를 들고 신나게 떠드는 옆 손님들의 앞에 놓여진 스테이크를 보면서 우리도 무언가 요리를 먹고싶어 주문할 타이밍을 보기 시작했다.


어느정도 시간을 보내면서 바 테이블에서 사장님과 간단한 대화들이 오고 갔고, 간간히 술에 대한 짧은 대화도 할 수 있었다. 드디어 바쁘신 사장님을 보고 살짝 고민했지만 맛있어 보이는 요리를 지나칠 수 없어 고민하다 나폴리탄을 주문했는데 기대보다도 훨씬 맛있었다.


군인 출신이라던 사장님의 전직이 의심스러운 순간이었다.


이 날 나의 첫 잔은 '옥토모어 10(Octomore10 56.8%)'이었다. 사실 PPM이 좀 더 낮은 라프로익을 먼저 맛을 볼까 하다가 나름 오랜만에 맛보는 옥토모어를 첫 잔으로 제대로 느끼고 싶었던 거다. 그리고 역시나 피트러버는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라프로익 브로디어(Laphroaig brodir 48%)', '하이랜드파크 18(Highlandpark 18 43%)'을 맛보았고 모두 만족스러웠다. 특히, 라프로익과 포트 캐스크의 만남이 브로디어가 생각보다 새롭고 괜찮았는데 옥토모어의 순서를 마지막으로 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약간의 후회가 들었다.


다음번에 간다면 좀 더 자연스러운 나로 즐길 수 있지 않을까.



@달리레코드 dali.rec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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