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끝의 바다에서

by 달리아

연일 뉴스에서 비극적인 사건사고들이 이어지는 날이었다. 며칠 심란한 마음이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봄은 다가오는데, 날씨는 풀릴 기색이 없었고, 미세먼지까지 매우 나쁨이라 외출하기도 힘들었다. 날씨 어플에서 뜨는 방독면 이미지를 보고선 문득, 친한 언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옛날 사람들이 살아서 돌아오면, 오염된 물과 미세먼지, 바이러스가 가득한 지금 이 지구의 모습을 보고선, 벌써 종말이 왔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정말 그럴 것만 같아 씁쓸한 기분이 들었지만, 비상구는 잘 보이지 않아 막막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아이 엄마를 따라 아이들과 양산 '꽃피는학교'에 놀러가게 되었다. 그곤에서는 마침 우리가 도착한 다음날 '춘분제' 행사를 한다고 했다. 새벽에 시작하는 행사였지만 참석하고 싶은 마음에 눈이 번쩍 떠졌다. 6시쯤 도착한 바다 앞에는 100여명의 마을 가족 분들이 모여 있었다. 아이들이 손을 잡고 작은 원을 만들자, 어른들이 큰 원을 만들어 아이들을 둘러섰다. 둥글게 모여 선 두 뒤 개의 원 안에서 사람들은 자신과 서로와 세상을 위해 기도를 하고 노래를 했다.


그 사이 빛이 어둠을 밀어내며, 낮이 찾아왔다.


"엄마, 나 이렇게 밤이 낮이 되는 거 처음 봐."


시시각각 농도와 채도가 변하는 하늘을 바라보던 첫째 말했다. 바다에 얼굴을 씻은 해처럼 말간 얼굴이 반짝거렸다.


마을 아이들은 크게 밀려든 파도에 발이 젖어도


'이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놀자!'


라고 약속이라도 한 듯, 모래사장 위를 뛰어다녔다. 아이들의 웃음 소리는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뚫고 나왔다.


도시에서 어딘가 갇혀있고 억압된 아이들을 주로 만나다가, 오랜만에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가슴이 시원해졌다. 아이들의 순수함과 고유성, 야생성을 지켜주려고 하는 어른들의 힘과 지혜가 느껴졌다. 날씨가 흐려서 해는 보이지 않았지만, 하나의 몸이라는 뜻의 '공동체'의 둥그런 원 안에서 해가 떠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행사가 끝나고 꽃피는 학교 학부모님들께서 준비해주신 따끈한 오뎅과 주먹밥을 든든히 먹고 학교로 돌아왔다. 낮잠을 한숨 자고 일어나, 선생님 한 분과 얘기를 나누다 <지구 끝의 온실>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책 속에서 그려진, 종말 속에서 지어진 마지막 온실처럼, 갈수록 어두워지는 세상의 끝에서 우리가 해야할 일들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낯선 방문객이었던 우리를 환영해주시고, 묵을 공간을 내어주시고, 밥을 나눠주시고, 마을을 안내해주셨던 마을분들의 친절이 떠올랐다. 서로를 살피고, 지지하며 서있던 유연하고도 굳건한 힘이, 땅을 딛고선 두 발바닥 아래에서부터 차올랐다. 수수께끼의 답을 찾은 것만 같은 기쁨이 번져왔다.


뒤척이는 아이들 덕에 깬 새벽에, 어제의 아침을 기억하고 기록하며, 아침을 기다린다. 소중한 것들을 지켜나가는 귀한 이들과의 연결과 연대 안에서 새 날이 시작된다.


지구의 끝 바다로부터 빛이 밝아온다.


#양산꽃피는학교 #춘분제 #아이들 #안의해 #어둠에서빛으로 #지구끝의온실 #지구끝의바다 #공동체

이전 21화경이로운 세상에, 비스듬히 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