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누리는 봄날의 풍경

by 달리아

아이의 열이 이틀만에 38도 아래로 내려왔다. 아픈 사이, 며칠 보지 못했던 뒷마당의 튤립이 꽃몽우리를 올렸다. 그 모습에 아이는 기운을 내어 화단에 물을 주고, 조심스레 튤립의 잎과 줄기를 쓰다듬는다. 파릇한 생명의 힘이 아이의 손끝으로 전해지는 것만 같다. 뒷마당에서 거실로 돌아온 아이는 책장에서 <거인사냥꾼을 조심하세요> 책을 꺼내 찬찬히 본다. 책 속의 숲과 거인과 아이를 오래도록 들여다본다.


아직 글씨를 모르니, '읽는다'가 아니라, '본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아이는 모든 책의 글이 아닌 그림들을 찬찬히, 세세히 본다. 글씨를 일찍 가르치지 않은 이유는 그 시절에만 누릴 수 있는 아이의 세상을, 아이 안의 거인을 지켜주고 싶어서였다. 글로 세상을 나누고 분석하기 전에, 깊은 연결을 감각으로 느끼고 잊지 않았으면 했다. 그 덕인지, 아이는 어딜가도 작고, 예쁜 것들을 찾아내 소중히 여기며, 상상하는 것을 즐긴다.


겨우내 빛이 잘 들지않았던 1층에 위치한 우리 집에도 봄볕이 길게 스며든다. 블라인드를 걷어올리고, 창문을 열어 환한 빛을 맞이한다. 빛과 바람을 쐬는 화분의 식물들은 기지개를 하듯 잎들을 펼쳐내는 것만 같다. 아이들이 <당신은 빛나고 있어요>, <모두가 빛나요> 책들도 꺼내두었길래 수선화 앞에 두었더니 아름답게 어울어진다. 오늘따라 단톡방이나 SNS에 가득 올라오는 벚꽃 구경은 가지 못했지만, 이미 봄은 집 안 가득 들어차있다.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틀동안 아픈 아이를 살피느라 피곤했던 몸에 긴장이 풀리자 나른함이 몰려온다.


편수냄비에 오트밀크를 부어 짜이 한잔을 뜨겁게 끓여마시고, 두 아이들이 고요한 틈을 타서, 이 순간을 기록하며 담아둔다.


언제든 편안하고 환한 기운이 필요할 때 꺼내볼 수 있도록. 행복은 멀리서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서 누릴 수 있는 것임을 잊지 않도록. 정채봉 시인의 싯구절처럼,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임을 기억할 수 있도록.


#주말일상 #뒷마당화단 #거인사냥꾼을조심하세요

#당신은빛나고있어요 #모두가빛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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