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이들에 대한 학대 기사가 끊이질 않아, 뉴스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요 며칠 뜨개질을 하며 이름도 모르고, 보지도 못한 아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양극단으로 치닫는 세상에서, 방치되고, 소외된 존재들이 늘어나고 있고 그 고통은 아이와 같은 약자들에게서 가장 먼저 드러나고 있다. 그러기에 아이들의 부모들만 탓하며 그를 개인의 문제로만 돌리기 전에, 우리 사회가 그만큼 병들고, 아픈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며칠 전, 둘째가 자다 깨서 엉엉 울었다. 둘째를 안고 토닥이다 보니, 아이 배에 가스 찬 게 느껴져서 속이 더부룩해지고, 답답해졌다. 아이의 등을 쓸어주고, 합곡혈을 눌러주다, 나도 같이 트림이 나왔다. 아이는 방귀를 몇 번 뀌고 다시 편하게 잠들었다.
10개월 동안 한 몸이었던 존재의 아픔이나 불편함은 본능적이고, 직관적으로 느껴진다. 모유수유를 하던 때엔 아이가 울 때마다 젖이 돌고, 가슴이 찌릿해졌다. 아이가 아프면 나도 같이 아프고, 아이가 웃으면 나도 덩달아 웃는다. 두 아이를 키우며, 나는 우리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유기체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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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 고린도전서 12:26
우리가 손가락만 다쳐도 온 몸이 함께 아프듯, 전체를 이루는 어떤 작은 부분의 고통은 모든 이어진 존재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아주 정교하게 짜인 그물의 씨실과 날실처럼, 우리의 존재와 우리의 고통은 서로 이어져있다. 미세 플라스틱과 방사능은 돌고 돌아 우리의 몸으로 흘러 들어오고 있으며, 기후위기는 나날이 피부로 느껴지고, 건강하지 못한 사회 구조는 끊임없는 불안과 분노와 두려움을 양산하며 내 일상을 위협하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나만 안전하고 건강하게 지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큰 상처를 경험한 뒤, 거의 1년간 극심한 우울증과 공황장애와 불안장애 등으로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때가 있었다. 그 뒤에도 크고, 작은 어둠의 시간들이 있었다. 그러한 고통의 수렁에서 나를 구원해주었던 것은 '나만 이런 것이 아니었구나!'라는 자각이었고, 나와 같은 아픔을 지닌 이들과의 연대를 통해서였다.
도저히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막막하고 답답한 고통 속에서, 온몸으로 그를 경청해주며, 따스한 말이나 몸짓으로 내 몸과 마음을 데워 주었던 이들을 기억한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그들이 나누어주었던 그 생명력과 사랑과 온기를 내 안에서 살리고 키워나가며 전하는 삶을 살고자 마음먹었다. 그 뒤로 내 삶은 기도로 채워진다. 거미줄에 맺힌 빗방울들처럼 연결되어 공명하는 우리가 깊은 연결 안에서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날마다 기도를 한다.
'세상의 모든 고통의 소리가 멈추기를... 서로를 아프게 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고, 서로를 살리는 선순환의 흐름 안에서 모두가 건강하고, 편안하고, 행복할 수 있기를...
이 기도가 빗줄기와 함께 세상 곳곳의 생명들의 가슴마다 닿기를...닿은 자리자리마다 치유와 지혜와 사랑의 씨앗들이 싹트고, 자라고, 피어나기를...
돌림노래처럼 매일 반복하는 이 기도가 당신의 기도와 만나 더 깊고, 풍요로운 강이 되어 흐르기를...
그 흐름 안에서 우리가 본래의 사랑과 힘과 지혜를 회복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