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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아스쿨 Aug 30. 2024

학교를 그만두며 아이들에게 쓴 편지

  13년 전, 학교를 나오며 가르쳤던 아이들에게 쓴 편지를 오랜만에 읽었다. 그 편지를 오래 간직해 준 학생 덕분이었다. 당시 13살이었던 학생은 벌써 26살, 그때의 내 나이가 되어 독일에 유학을 떠났다. 유학을 가기 전에 남자친구와 함께 찾아와 오랜 기억을 함께 떠올리며 웃었다.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며 나이 들어가는 것이 행복하다. 나는 편지에 썼던 물방울처럼, 강물이 되어 세상 곳곳을 흐르다가 올해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당시 내가 품었던 질문들에 대한 답들은 내 삶 속에서, 아이들과 나 사이에서 펼쳐지고 있다. 혼란과 방황이 끝난 일상은 어느 때보다 평화롭고, 감사하다. '지구별'이라는 학교에서 나는 여전히 배우고, 성장하는 학생이기에. 오늘도 아이들과 함께 자라나고, 피어나며, 더 우거지고 풍요로운 숲을 만들어간다.

당시 썼던 편지


  봄비가 내리는 아침이구나. 어젯밤에는 내내 천등과 번개가 치더라. 시끄럽거나 무서워서 잠을 자기에 힘들었던 건 아니니? 그래도 ‘토닥토닥'하는 것만 같은 빗소리를 들으면 선생님의 마음도 '콩닥콩닥' 뛴단다. 비가 내리고 나면, 항상 하늘도 더 맑아지고, 온 세상의 색이 진해지기 때문이지. 특히 비를 머금고 있는 꽃들과 나무의 색깔과 향기는 참으로 좋아! (아직 느꼈다면 한 번 가만히 멈춰서 조금 더 자세히, 그리고 조금 더 오래 들여다보렴)  


  물론, 선생님은 태양이 환하고 따뜻하게 세상을 보듬어 주는 날도 좋아하지만 이처럼 비가 내리고. 천둥번개가 치는 날도 있어야 더 아름다운 세상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무엇보다 봄에 내리는 비에는 어떤 신비한 힘이 있어서, 추운 겨울날 동안 얼어있었던 땅을 녹이고. 그 안에 잠자고 있었던 살아있는 것들을 깨운단다. 마치 늦잠을 자는 나를 깨우는 엄마의 목소리나 손길처럼 말이야. ‘폴짝'하고 뛰어오르는 개구리와 같은 동물뿐 아니라, 땅 속 깊이 잠자고 있었던 싹들도 그런 봄비의 손길에 잠을 깨. 


  씨앗은 문득, 자신이 씨앗이 되기 전 아름다운 꽂이었다는 것을 기억하게 되지. 아주 생생한 꿈처럼 또렷이 땅 위에 있는 세상을 그릴 수 있게 된 씨앗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딱딱한 껍질 속 작은 공간이 너무 답답하게 느껴지기 시작해. 그러다가 자신 안에 보드라운 싹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단다. 그 싹은 아주 연약해 보이지만 사실 참으로 강해서 온몸으로 껍질을 깨고 나와 땅 위로 올라와. 


  그렇게 싹이 돋아나는 과정은 참으로 많이 아프지만 세상 밖으로 눈을 '빼꼼' 내민 짝은 따뜻한 햇살과 넓고 푸른 하늘과 아름다운 꽃과 나무, 나비가 있는 세상, 그리고 자신을 보고 있는 너를 만나게 되는 거야. 겉으로 봤을 때는 정말 작은 전처럼 조그맣고, 돌멩이처럼 단단하기만 한데, 씨앗 안에 어쩌면 그렇게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이 있었는지! 정말 놀랍고 신기하기 그지없지? 그건 마치 새가 딱딱한 알껍질을 깨고 나와 날갯짓을 하는 것처럼 멋진 것 같아. 그런데 사실, 너라는 사람이 그렇다는 것도 알고 있니?  


  너는 너만의 고유하고 특별한 색깔과 향기를 가진, 세상의 그 어떤 꽃보다 아름다운 꽃이란다. 세상의 모든 꽃이 아름답고 향기롭듯이 너도, 비교할 수 없이 이미 있는 그대로' 아름답디, 아름답단다. 그리고 너는 정말 무한한 하늘을 날 수 있는 자유롭고 용기 있는 새란다. 


  선생님은 그런 너에게 봄비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 네 안에 그처럼 예쁜 꽃이 잠자고 있다고, 이제는 일어나서 정말 아름답게 피어나 세상을 볼 때가 되었다고 말이야. 비는 곧 그치지만, 비가 땅에 스며들거나, 꽃이나 풀잎에 맺히거나, 고이거나 흐르기도 하고, 그러다가 수증기가 되고 구름이 되어 다시 비가 내리는 것처럼 세상에서 사라지지는 않는단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늘 변하고, 흐르고 있지만, 언제 어디선가 강물이 바다에서 만나듯. 다시 만날 수 있지. 하지만 그렇게 다시 만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따뜻한 포용으로 마음과 마음이 담은 우리의 가슴속에 서로가 늘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거야. 


  사실 우리 모두는 삶이라는 학교 속에서는 언제나 학생이란다. 너무도 맑고 아름다운 마음과 영혼을 지닌 너희를 가르치기엔 아직 부족한 점이 참 많아서, 선생님은 다시 학생이 되어, 이 넓고 다양한 세상에서 많은 것을 배울 거야. 그리고 그를 글에 담아 세상에 전할 거야. 무엇보다 그동안 너희들에게 정말 넘치도록 많은 사랑을 그 사랑이 필요한 이들에게 전하러 갈 것이란다.('지구가 100명의 마을이라면'에 나와 있듯이, 세상엔 따뜻한 사랑이 절실하게 필요한 존재들이 참으로 많단다.)  


  그렇게 사랑을 나누고, 전하고, 그 안에서 배우면서 나는 너의 얼굴을, 꽃보다 아름다운 네 웃음을 떠올릴 것 같아. 존재 자체로 기쁨과 행복을 주는 꽃처럼, 세상 어딘가에서 피어나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하고 있을 너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마음 가득 꽃이 피어나듯이 참으로 기쁘고 행복하고 힘이 날 것 같아. 꼭 그러리라 믿는다. 강물처럼,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순간, 최선을 다해서 배우고, 나누고, 웃고, 행복하고, 사랑하렴. 사랑한다. 있는 모습 그대로의 너를.       


                                                                               사랑과 마음을 가득 담아, 선생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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