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롭게 죽는 법’ 워크숍은 내게 '지금 여기에서 집착 없이 평화롭게, 사랑하며 살아라. 그러면 죽음 역시 그러할 것이다'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에 참여하고 나서 나는 죽음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이 생겨, 한국으로 돌아와 호스피스 교육을 받고 실습을 하게 되었다. 여러 사연들을 지니고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온 분들의 다양한 모습, 특히 마지막 죽음의 순간을 함께 한다는 것은 참 강렬하고도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그 뒤로 얼마 뒤, 중풍으로 쓰러지신 뒤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부모님 댁에 누워계셨던 할머니의 임종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지켜드리며, 나는 다시 한번 죽음의 과정을 생생히 느끼고 체험할 수 있었다.
내가 들었던 죽음에 대한 강의에서는 우리의 몸이 ‘지(地)-수(水)-화(火)-풍(風)’이라는 자연의 4가지 원소에 마음/의식이라는 것이 합쳐져서 삶을 살아간다고 했다. 또한 죽음의 과정에서는 그러한 에너지들이 차례로 사라져 간다고 했다. 할머니께서는 갑자기 기운을 잃으시고 목이 꺾이시는 것을 보고, 나는 땅의 기운이 흩어지며 죽음의 과정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가족들에게 내가 배운 것을 설명드리고 할머니를 편안한 곳에 눕혀드린 뒤, 계속 곁을 지켜드렸다.
할머니의 몸에서 수분이 빠져나가며 몸이 건조해지고 혀가 말랐다. 그다음으로는 몸의 온기가 없어지고 싸늘한 냉기가 감돌았고, 이후 서서히 가쁜 숨이 잦아들다가 목까지 차오른 숨이 끊겼다. 목숨이 다한다는 표현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놀람과 당황스러움으로 우왕좌왕하시며 눈물을 보이시는 부모님을 안심시켜드렸다. 주변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움이나 혼란 속에서 맞이하면, 죽는 과정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전의 경험들 덕분에 나는 이미 각본을 알고 있는 배우처럼 상황에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배웠던 것들을 최대한 떠올리며, 모든 혼란과 두려움을 평화롭게 전환하고자 했다. 사람의 청각은 가장 마지막까지 남는다고 들었기에, 가족 모두 할머니에게 전하고 싶은 말들을 전하며 할머니의 삶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에 대해서 새기며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가족들이 함께 하나의 삶을 정리하는 시간은 우리 모두에게도 정말 소중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아빠는 할머니가 어렸을 때 자라오셨던 환경들, 시집을 온 이야기, 26살의 나이에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은 뒤 4남매를 홀로 기르셨던 이야기 등 할머니의 인생에 대해 잔잔히 이야기를 해주셨다. 모든 이야기를 끝낸 그 순간 거친 호흡을 쉬시던 할머니께서는 숨을 멈추셨다. 방 안에는 매우 고요하고, 신비로운 느낌이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함께 있었던 나의 부모님, 사촌언니, 그리고 내가 느꼈던 것은 안타까움, 회한, 슬픔이 아닌 편안함, 감사함, 기쁨이었다.
거실에서 깜빡 잠이 들었던 사촌언니는 할머니께서 살아생전처럼 머리를 단정하게 쪽지 신 단정한 모습으로 하얀 옷을 입고 무지개다리를 타고 걸어가시는 꿈을 꾸었다고 했다. 그것은 눈물이 아닌 미소가 지어지는 작별이었고, 너무 꼭 끼는 옷을 벗어낸 것과 같이 홀가분하고 할머니의 모습은 어느 때보다 편안해 보여 경이로움마저 일어났다.
영롱한 보름달이 환히 세상을 비추는 깊은 밤,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고도 평화로운 죽음의 순간이었다.
나는 할머니의 임종을 지켜드리며 우리가 살아가면서 정말 죽음다운 죽음을 잘 준비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큰 숙제이자 과제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은 더 이상 두렵거나 삶과 동떨어져 멀리 있는 미지의 세계가 아닌, 삶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그림자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준비하느냐에 따라 죽음의 과정은 하나의 끝을 맺고 새로운 시작을 하는 축제이자 배움의 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나의 이런 나의 경험을 그레그에게 써서 메일로 보냈다. 그레그는
‘할머니가 우리의 곁을 떠난 것이 아니라, 태양 속에, 구름 속에, 땅 속에, 빗속에 머물러 항상 우리와 함께 존재하신다는 것을 잊지 마려무나.’
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그의 말대로 햇살 속에서, 바람 속에서, 구름 속에서 늘 우리와 함께 있는 할머니를 느낄 수 있었다. 죽음에 대한 표현 중 하나인 '돌아간다'는 표현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그동안 내가 다닌 학교에서 이처럼 삶과 죽음에 대해서 가르쳐주지도, 사유해볼 시간이나 기회도 주지 않은 것에 대해 정말 아쉬웠다. 이렇게 진정한 삶과 죽음의 의미를 되짚어보고, 진정으로 의미 있는 삶을 살아내고,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하는 법이야 말로, 우리가 삶에서 배워야 할 가장 기본적인 과제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는 아무런 의미 없이 시험 점수를 잘 받기 위해 수학공식을 외우거나 과학 원소 기호를 암기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해 보였다.
또한 죽음은 더 이상 회피해야 하는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닌 삶의 부분이자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며,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마주 하느냐에 따라서 지금의 삶이 달라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과거가 궁금하다면 지금 현재를 보아라.’
‘나의 미래가 궁금하다면 지금 현재를 보아라.’
라는 말이 떠오르면서, 매 순간 지금 여기에서 충분히 평화롭고 행복하다면, 나의 마지막 역시 그러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매 순간, 순간의 시간들이 참으로 소중하게 다가왔다. 내가 느끼고, 생각하고, 배우고, 다른 사람들과 무언가를 나누며 함께 성장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 기적과 같았다. 돌아보니 그동안 살아오면서 대부분의 시간 동안 과거에 잘못에 대한 후회를 하거나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놓쳤던 ‘현재’들이 참으로 많았다. 동시에 잠을 자고 깨어나면서,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매 순간 죽음과 삶을 넘나들며 사는 지금 이 순간을 100% 살아낼 수 있다면 후회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