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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아 Aug 11. 2022

마지막 남은 과자 하나

  “리, 우리 평화롭게 죽는 법 배우러 가지 않을래?”

  인도 북부 다람살라에서 만나 친구가 된 캘리포니아 출신의 비벡이라는 식당에서 호들갑을 떨며 얘기했다.

  ‘헉! 캘리포니아에서는 마약이나 환각제들이 많다는데 얘가 혹시?’

라는 생각에 정신을 똑바로 차리며, 되물었다.

  “뭐라고? 평화롭게 죽는 법? 에이, 그런 걸 어떻게 배워. 누가 가르쳐준단 말이야?”

  

  그는 ‘peaceful dying'이라는 제목의 홍보물을 눈앞으로 불쑥 들이밀었다. 근처 투시타 명상센터에서 진행되는 워크숍이었다. 평생 미국과 여러 나라를 다니며 수십 년간 호스피스 활동과 교육을 해온 분이 워크숍 이끈다고 적혀 있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인생수업>이라는 책을 통해, 죽음을 죽음답게 맞이하도록 도와주는 호스피스 운동에 대해서 알고 있었기에, 나는 호기심이 생겼다. 왠지 두렵고, 무섭고, 슬픈 '죽음'이라는 단어 앞에 붙은 '평화로운'이라는 수식어가 낯설어서 더욱 호기심이 생겼다. 아까의 의심은 온데간데없고, 흥미를 보이는 나를 보며 비벡은 내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며칠 뒤, 나는 비벡, 그리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참가자들과 함께 숲 속에 있는 작은 명상 센터에 앉아 있었다. 강사인 그레그는 20명 남짓한 참여자들의 이름과 국적, 그리고 지금 이곳에 있는 이유를 물은 뒤

Mary Oliver의 <When Death comes>라는 시를 조용히 낭송하였다.


죽음이 다가오면

                           -메리 올리버


가을날 배고픈 곰처럼

죽음이 다가와 지갑에서 반짝이는 동전들을 모두 꺼내

나를 사고 지갑을 닫아 버리면

열꽃처럼

죽음이 다가오면

어깨뼈 사이의 빙산처럼

죽음이 다가오면


나는 호기심과 경이로움에 차서

그 문을 열고 들어가리라

그곳은 어떤 곳일까, 그 어둠의 오두막은?

그러므로 나는 주위 모든 것들을

형제자매로 바라본다


시간을 하나의 관념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영원을 또 다른 가능성으로 본다

그리고 나는 각각의 생명을 하나의 꽃으로 여긴다

들에 핀 야생화처럼

모두 같으면서 서로 다른

각각의 이름을 입 속에 맴도는 편안한 음악으로

모든 음악이 그렇듯 침묵을 향해 가는 음악으로


그리고 저마다의 육체를 용감한 사자로

지상의 소중한 어떤 것으로

생을 마칠 때 나는 말하고 싶다


내 생애 동안 나는 경이로움과 결혼한 신부였다고

세상을 두 팔에 안은 신랑이었다고

생을 마칠 때 나는 알고 싶지 않다

내가 특별한 삶을 살았는지, 진정한 삶을 살았는지

한숨지으며 무서워하거나

논쟁을 벌이고 싶지 않다


단지 이 세상을 왔다간 것으로

끝내고 싶지는 않다



시의 마지막 구절의 여운에 빠져 있는데, 그레그가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죽음에 대해 사유하지 않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사는 데 바빠서, 너무 젊어서, 집착 때문에, 나에겐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서, 생각만 해도 고통스러워서...'

등 여러 사람들의 답변이 이어졌다. 그레그는 '하루에 전 세계에서 15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죽는다.'는 통계정보와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사실을 담담한 목소리로 전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사람들의 얼굴은 사뭇 진지해 보였다. 그레그는 침묵을 깨고, 소파에 누워 TV를 보면서 과자를 먹을 때를 떠올려보라고 했다. 맛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아무 생각 없이 과자를 먹다가, 과자가 하나 남은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제야 그를 조금 더 천천히, 조금씩  음미하면서 먹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진정 이번 생의 마지막인 죽음을 제대로 받아들이고 인식하게 될 때 삶 역시 보다 가치 있게 제대로 살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에 이어 그레그는 죽는 순간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음은 분명한데, 왜 우리는 가져갈 수 없는 것들에 그토록 집착하고 사는지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서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하기보다는 가지지 못한 것들을 가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를 살펴보라고 하셨다. 나는 여행을 떠나오기 전 가방을 싸면서, 작은 여행 가방 안에 넣을 수 있는 것이 너무 적다는 것을, 그러면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줄 알았던 많은 것들이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을 떠올렸다.

 

그레그는 비폭력 운동가였던 간디가 암살을 당한 그 순간에도 신의 이름을 불렀다는 이야기를 이어갔는데, 이는 그가 매 순간 죽음을 준비하며 얼마나 깨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예라고 말했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불안정한 삶 속에서, 그처럼 매 순간에 자신이 느끼고 생각하는 상태가 그대로 죽음의 순간에 드러나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상태에 대해 현재에 충분히 존재하는 것이라는 표현을 썼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때 내가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을’ 등 과거에 대한 후회를 하거나, ‘점심때 무엇을 먹을지, 어떤 직장을 갖는 게 좋을지?’등의 크고 작은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며 살고 있었던 나는 매 순간, 순간의 현재에 집중하라는 말이 꽤나 생경하게 들렸다.

  

‘충분히 현재에 존재하며 매 순간을 느낀다는 것은, 과자를 하나하나 깊이 음미하는 것과 비슷한 것일까?’


남아 있는 나의 삶이 마치 하나의 과자가 되어 내 손에 들려있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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