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죽음 워크숍 두 번째 날 아침에는 즉흥 글쓰기가 이어졌다. 글쓰기의 주제는 '내가 생각하는 가장 최악의 죽음, 내가 원하는 최상의 죽음'이었다. 각기 다른 나라와 문화권에서 자라온 사람들이었지만, 모두가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 홀로 쓸쓸하게 맞이하는 죽음을 가장 최악으로 꼽았다. 그리고 원하는 죽음에서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돌아보면서 편안하게 맞는 죽음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런 나눔을 하기 전까지 내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해왔던 죽음의 느낌은 병실에서 여러 장치들을 달고 가쁜 호흡을 쉬며 조금이라도 더 살기 위해 버둥거리는 처절함이었다. 죽음을 기리는 장례식장은 묵직한 슬픔과 살아생전 차마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의 넋두리로 가득한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죽음에 대한 생각 등을 나누는 것은 두려움으로 쌓인 금기와 같았다.
죽음에 대한 여러 시나리오를 경청하던 그레그는 많은 이들이
'나는 사람들의 평균 수명까지 건강하게 살 것이다.'
라는 보장되지 않은 착각 속에서 현재를 희생하고, 미래를 계획한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의 바람과는 다르게 죽음은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알 수 없다. 그 순간 환생을 믿는 문화인 티베트의 한 고승의
'내일이 먼저 올지, 다음 생이 먼저 올지 아무도 모른다.'
라는 말씀이 떠오르며, 온몸에 전기가 통하는 것만 같은 전율이 흘렀다.
그레그는 이처럼 우리 삶의 전제가 잘못되었기에, 우리는 정작 계획에 없던 죽음 앞에서 지나온 삶을 후회한다고 했다. 그렇기에 우리는 무엇보다 언제든 잘 죽기 위한 준비와 연습을 해야 한다는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건 보다 적극적으로 삶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시간에 들었던, '현재에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표현이 좀 더 가슴 깊이 와닿는 순간이었다.
죽음에 대한 글쓰기와 강의와 전체 토론, 명상 뒤에는 5-6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1시간 정도 더 깊이 생각과 경험을 자유롭게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햇살이 잘 드는 곳에 자리 잡은 모임원들은 그레그가 정해준
“당신은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죽음과 관련해서 어떤 경험을 했나요?”
라는 질문을 서로에게 던지고 자유롭게 대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 왼편에 앉아있던 초록빛 눈을 지닌 아이스랜드 출신의 청년은 자신에게 질문이 돌아오자 갑자기 웃옷을 벗었다. 더워서 그런가 했는데, 그의 몸을 본 나와 다른 사람들도 잠시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그의 온몸이 상처투성이였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꿰맨 자국들의 그의 온몸 전체에 벌레처럼 징그럽게 퍼져있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침묵을 깨고 그가 말했다.
“나는 죽었다 살아났어요. 정말 끔찍한 삶이었죠. 마음이 괴로워 매일 술을 마시고 마약을 복용하고, 죄책감 없이 훔치고, 사람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그렇게 벌레보다 못한 삶을 살던 나는 어느 날 나 같은 인간은 살만한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했어요. 나 자신이 나를 용서할 수 없어 나 자신을 찔렀지만 나는 여전히 살아있었어요. 안 되겠다 싶어서 창문을 깨고 무작정 밖으로 뛰어들었어요. 아마 5층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나는 며칠 후 다시 병원 중환자실에서 눈을 떴어요.
눈을 떴을 때 나는 살아있었어요. 사실 생의 마지막 그 순간에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서 나는 순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그 의지가 나를 살게 만들었는지,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가 나를 도와주었는지 그것은 나도 모를 일이에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렇게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고 나서 나의 모든 인생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졌어요.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으니까요. 그때부터 정말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이지요. 그때부터 나는 삶과 죽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더 이상 내 인생을 낭비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는 여기까지 말하고 나서 우리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처음 그의 고백에 눈이 휘둥그레졌던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지금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이지요.”
그가 이야기를 마무리했지만, 아무도 섣불리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다음이 내 차례였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은 나에게로 향해 있었다.
“당신은 정말 용기 있는 사람이네요. 그렇게 솔직하게 우리와 경험을 나누어줘서 정말 고마워요.”
나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일자로 닫혀있던 그의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의 솔직한 고백에 나 역시 꾸밈없이 나의 마음을 열어 가슴속 이야기들을 꺼냈다.
“나는 얼마 전까지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어요. 불과 한 달 전까지 나는 내가 다시는 이렇게 밖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어울릴 수 있으리라 상상조차 할 수 없었지요. 나 역시 자살을 생각했었지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죽는 것도 너무 무서웠어요. 살지도, 죽지도 못하고 좀비처럼 지내던 나는 우연히 달라이 라마의 책을 읽게 되었어요. 죽기 전에 진짜 행복한 사람을 한 번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리고 이곳에 와서 제 삶은 완전히 달라졌어요. 그리고 나 역시 그동안 피하기만 했던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을 용기 있게 마주하기로 했어요.”
잠시 뜸을 들인 나는 말을 마무리했다.
“이것이 바로 지금 내가 당신 옆에 앉아있는 이유지요.”
평화로운 죽음과 죽음 앞의 삶의 의미를 찾아 먼 곳까지 떠나온 사람들의 사연은 모두 달랐지만, 삶의 고통과 상처와 아픔을 딛고, 새로운 삶의 길을 걷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모임을 마치고, 쉬는 시간에 나는 근처의 숲길을 걸었다. 멀리 해가 넘어가는 산등성이를 비추는 빛, 가까이에 있는 다양한 나뭇잎들의 모양, 새들과 곤충들이 온몸을 울리며 내는 소리, 흙내음과 팔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 등이 어느 때보다 생생하게 느껴졌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생의 순간, 순간, 나는 숨을 쉬고 살아있었다!
다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예전에 아우수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난 뒤 로고 테라피(의미치료)를 만든 의사인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인생을 두 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이미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 빅터 프랭클
실로, 우울증 이후의 삶은 내게 두 번째 인생처럼 느껴졌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다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어둠의 구덩이에서 나와 만난 세상은 기적이고, 경이로움이 아닐 수 없었다.
'내게 주어진 두 번째 인생에서 나는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죽음 앞의 삶의 유한함을 받아들이고 인식할 때마다, 내 안의 무한함이 꿈틀거리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