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나의 행동이나 감정, 생각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다. 이불킥을 하게 되는 사건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했던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나의 말과 행동을 조절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은 불안을 일으켰다. 그에서 벗어나기 위해 했던 심리상담 공부를 통해 나는 내 안의 보이지 않는 무의식, 내 안의 심어진 신념이나 자동화된 생각들이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를 내가 알고 조절할 수 있도록 의식화하기 위해서는 나의 지난 경험들과 궤적을 이해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함을 느꼈다.
그를 위해 여러 상담과 치유 기법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중 하나가 수도사이자 심리치료사인 버트 헬링거가 만든 가족세우기(Family Constallation)이었다. 10여 년 전 처음 접했던 가족세우기 작업은 이전에 경험했던 사이코드라마나 가족 치료 기법 등을 넘어선 깊은 영적인 여정이었다.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무의식을 끌어내어, 가족체 안의 역동과 나 자신의 위치를 보여주고 변형해가는 점에서 이는 직관적이고 직접적인 통찰을 주었다. 그 뒤 2-3년 정도 집단 세션에 열심히 참여하며 트레이닝 과정을 수료하고, 관련된 책과 자료들은 거의 다 읽을 정도로 꽤나 열심히 참여했던 작업이었다.
Netflix 화면 캡처
최근 넷플릭스의 '또 다른 나'라는 시리즈에는 놀랍게도 가족세우기 세션이 등장한다. 암, 이혼, 남편의 바람 등 인생에서 각각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는 세 여자는 터키의 해안가 근처의 장소에서 가족 세우기를 통해 자신의 어린 시절이나 조상들 안의 해결되지 못한 상처와 트라우마를 마주하고 이를 변형해나간다. 드라마틱한 설정이나 장면들이 있긴 하지만 영상에서는 자신이 삶에서 자신도 모르게 일어나는 사건이나 행동 패턴에 부모나 조상들의 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잘 드러나 있었다. 우리말에도 흔히 쓰이는 '대물림'이라는 단어에서도 대를 이어 전해지는 것들이 있음이 드러나있다.
드라마 속에 종종 등장하는 '트라우마는 어떻게 유전되는가'라는 책에서는 이런 문장이 인용되어 있다.
당신이 자신의 손바닥을 깊이 들여다보면 부모와 모든 조상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들 모두는 이 순간에 살아 있다. 그들 모두가 당신 몸속에 있다.
당신은 그들 각각의 연속된 존재이다. - 틱낫한
내가 나만으로 이루어진 존재가 아님을, 나의 뿌리와 줄기와 가지를 이루는 삶의 줄기와 흐름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나의 세계와 영역을 확장시켜준다. 그리고 내 삶의 패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위의 책의 표지에서처럼 정교하게 짜인 인과의 법칙은 내 안에서도 작용하지만, 내가 그것을 인식한 만큼 그 고리에서 벗어날 수도 있고, 그를 멈출 수 있게 된다. 반사적으로 작동되는 업식에 수동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내가 선택을 하고 창조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나 역시 가족세우기를 비롯한 많은 치유 작업들을 통해서 내 안의 상처와 고통을 직면하고 이를 뚫고 나오며 변형하는 작업들을 해오고 있다. 그 과정에서 집단 무의식이라고 하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기도 했다. 그를 피하지 않고 마주했을 때, 나는 짙은 구름 뒤의 해와 달처럼, 빛나는 사랑을 만났다. 모든 고난과 상처와 역경에도 불구하고, 내게 전해진 생명과 사랑의 힘, 용기, 지혜가 강물 줄기처럼 내 안에 흐르고 있음을 느꼈다. 고통에서 사랑으로, 상처에서 창조로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쇠를 금으로 만드는 연금술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세우기를 하면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순간은, 모든 세션을 마치고 나서 진행자분이
"역할 밖으로 나오세요."
라고 얘기하는 순간이었다. 세션의 장 안에서 나, 그리고 다른 사람이 지고 있던 무거운 짐과 같은 책임감과 고통과 상처와 아픔들을 내려놓고 빠져나올 때엔 날아갈듯한 가벼움의 느낌이 들며, 모든 것이 역할이었음을 자각하게 되었다. '또 다른 나'를 보며 오랜만에 예전의 경험들과 배움을 떠올리며, 내가 지금 짊어지고 있는 역할의 무게를 돌아본다. 그리고 마치 연극 무대의 배우가 무대를 마치고 난 뒤의 모습처럼, 홀가분하게 그 배역에서 빠져나와 숨을 고른다.
내 안의 엉키고 설킨 실타래들 너머에 흐르고 있는 생명의 강줄기를 느끼며, 나의 부모님과 조상들이 전해 준 이 소중한 생명을 잘 꽃 피우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것이 나와 연결된 모든 존재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길임을 잊지 않고, 빛과 사랑을 밝히고 비추며 살아가야지... 구름이 걷히자 환히 모습을 드러낸 보름달 아래에서 기도하며, 미소를 짓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