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내가 가장 미웠다

by 달리아

서른아홉. 청년의 끝자락에 서서, 나의 청춘을 돌아보았다. 예전 사진들 속의 나를 보니, 참 예쁜 시절이었다 싶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나를 가장 미워했었다. 어렸을 때부터 늘 평가받는데 익숙하다 보니, 나 자신을 평가하는데 익숙했고, 걸핏하면 나를 판단하고, 비난했다.


내가 나를 예쁘게 여기지 못하고 못마땅하게 여기다 보니, 나를 보고 예쁘다고 하는 사람들을 쫒을 수밖에 없었다. 나를 보는 기준과 중심이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밖에 있었으니, 나는 외부의 사소한 말과 행동에도 자주 출렁거렸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가 곧 내가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기준과 판단에 갇혀서 사는 삶은 마치 감옥과도 같았다.


9개월 동안 말을 거의 하지 않을 정도로 심한 우울증을 앓고 나서야, 나는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를 극복해가며 나는 더 좋은 성적과 등급을 받아야만, 더 예쁜 외모를 가꾸어야만 인정받고, 관심받고, 사랑받을 수 있다는 틀을 깨고, 어떤 모습의 나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힘과 용기를 길러나갔다.


있는 그대로의 내 존재 자체를 내가 먼저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할 때, 다른 존재들도 그렇게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학창 시절에, 그리고 나의 청춘에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자기 사랑의 길을 걷게 되면서, 나의 삶과 존재는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20대만큼 건강하지도, 예쁘지도 않지만, 중심을 가지고 스스로를 돌볼 수 있고, 언제든 위로하고 응원할 수 있는 지금의 내가 나는 참 좋다.




최근 청년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요즘 청년들이 양극화된 사회 속 불안정한 일자리 안에서 많이 힘들어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 몇 개월 단위의 계약직에 모든 시간과 열정을 쏟아붓고 소진되는 모습들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무엇보다 그 안에서 힘들고 아픈 것을 사회 구조와 시스템의 모순이 아닌 자신의 탓을 한다는 것에 참 가슴이 아팠다.


나 역시, 그랬었고, 그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가 누구인지,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치열하게 물어왔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는 만큼, 나를 돌보고 사랑하는 힘으로 진정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선택하며 꾸준히 자신만의 길을 가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여정을 담은 글들은 아래 브런치북에서도 연결되어 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ibecomemysel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