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 한 걸음, 빛으로, 사랑으로

by 달리아

전화기 너머로 아빠가 교통사고로 의식 불명 상태라는 소식을 듣고, 나는 펑펑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

‘제발 아빠를 사랑할 기회를 달라.’고.

‘아빠에게 받기만 하고, 드린 것이 하나도 없으니 부디 아빠를 지켜달라.’고.

하늘에서 그 기도를 들어주셨는지, 운전자석에 부딪혀 논두렁에 떨어진 트럭은 폐차를 해야 할 정도로 망가졌지만, 아빠는 큰 외상 없이 살아남으셨다. 하지만 그 후유증으로 인해 3차 신경통 등 극심한 통증과 마비 증상으로 그 후 몇 번의 수술과 치료를 받고 계신다.


아빠의 사고 전까지 내게는 아빠와의 서먹한 관계와 거리감을 해소하는 게 큰 과제였다. 그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상담을 받고 노력해 보기도 했지만, 아빠와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누구보다 사랑하고 싶고, 가깝고, 다정하게 지내고 싶은 존재와 그리하지 못한다는 건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나의 아빠는 태어나신 지 1년도 안 되어, 교통사고로 당신의 아버지를 잃으셨다.

‘네 아부지는 금송아지를 사서 올 거니 기다리라.’

는 주변 사람들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신 8살 무렵, 아빠는 그때부터 철이 드셨다고 했다.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살아오시며 아빠는 본인의 감정을 숨기고, 웃지도 울지도 않는 삶에 익숙해지셨다.


나는 그렇게 감정표현이 없고, 무뚝뚝한 아빠가 늘 어려웠다. 집에 놀러 온 친구들이

“너희 아빠는 형사냐?”

고 물을 정도로 아빠의 표정은 굳어있었고, 아빠는 늘 일을 하느라 바쁘셨다. 워낙 부지런하셨던 아빠 덕분에, 나는 물질적인 어려움 없이 자라났지만, 마음 한 켠에는 항상 채워지지 않는 결핍이 있었다. 나는 아빠가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부르며 안아주시거나, 나와 놀아주시면 좋겠다고 바랐으나, 그 욕망은 언제나 이루어지지 않았고, 나는 평생 서로에게 다가가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사고로 인해, 나는 사실 내가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또 얼마나 사랑받고 싶었는지를 생생하게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부족하고 못나서 사랑받지 못한 것이라는 자책감이나 좌절감 등 아빠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착각으로 만들어졌던 얼음들이 깨지며 그 안에 늘 흐르고 있었던 강물 같고, 바다 같은 아빠의 사랑이 쏟아져 나왔다.

‘내 밥숟가락 위에 올려주시던 발라진 생선살, 중학교 시절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학교 앞에 태워주신 것, 직장을 그만두고 하고 싶은 데로 살겠다고 선언했던 순간에도, 우울증과 여러 병으로 아파 누워 있을 때도 아무 반대나 비난 없이 믿음과 침묵으로 지켜주셨던 그 크고 깊은 사랑…….’

아래의 시에서처럼, 아버지는 아버지만의 방식으로 내게 끊임없이 사랑을 전해주고 계셨음을 뒤늦게나마 알게 되었다.


내가 원했던 방식이나 표현이 아니었다고 해서, 그것이 사랑이 아닌 것이 아니었다.


wood-g5af9ff485_1920.jpg




그 겨울의 일요일들


로버트 헤이든


아버지는 일요일에도 일찍 일어나

검푸른 추위 속에 옷을 입고

날마다 모진 날씨에 일하느라

갈라져 쑤시는 손으로

재 속에서 불씨를 찾아 살려 놓았다

하지만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았다

잠에서 깨면 추위가 바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방이 따뜻해진 뒤에야 아버지는 우리를 부르셨고

그제야 나는 느릿느릿 일어나 옷을 주워 입고

오랜 시간 쌓인 집안의 분노가 두려워

아버지에게 건성으로 말을 건네곤 했다

추위를 녹여 주고 내 신발까지

닦아 놓은 아버지에게 말이다

내가 그때 어찌, 어찌 알았을 것인가

사랑의 엄숙하고 외로운 사명을




어느 날엔 병원복을 입고 앞서 걸어가시는 아빠의 등이 눈에 들어왔다. 아빠가 내게 다가와 주시기만을 바랐던 예전 같았으면, 가까이 가지 못했을 텐데, 이번엔, 마치 어떤 힘에 이끌리듯, 한 걸음, 한 걸음 성큼성큼 아빠에게 다가가서 아빠의 등을 덥석 안았다.

그리고는 아빠의 팔을 내 어깨에 감싸고, 아이처럼 엉엉 울면서 아빠에게 말씀드렸다.

“내가 교통사고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시냐?, 내가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시냐?, 그동안 아빠 걱정 끼치고, 오해해서 너무나 죄송하다. 남은 생 동안 효도해야 하니 건강히 오래 사시라.”

고 쏟아내는 나의 말을 다 들으시고 나서 아빠는

“인생사 새옹지마이고, 아빠는 괜찮다.”

고 평생을 상용구처럼 쓰시던 말씀을 하셨다. 그런 아빠의 한결같음도 사랑으로 다가와서 울고, 또 웃었다. 그 순간 아빠가 평생을 마음 깊숙이 숨겨왔을 여리고 어린아이와 내 안의 아이가 만나서 서로를 꼭 안았다.

forest-g16f64efc8_1920.jpg

그런 아빠를 바라보며, 나는 다시금 느낀다. 우리는 모두 아픔과 좌절과 외로움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지만, 그를 회복하고 치유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고, 체화해가는 것임을. 그때서야 진정으로 그 사랑을 전하고 또 나누며 살아갈 수 있음을. 그것이 사람됨과 삶의 목적임을. 그리고, 서로에게 용기 내어 다가간 한 걸음, 한 걸음이 우리는 상처와 두려움에서 사랑과 빛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를 기억하며, 남은 삶에서는 아빠와 함께,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 걸음, 한 걸음 계속 나아갈 수 있기를, 그 걸음, 걸음이 사랑의 물줄기가 되어 흘러가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