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몸살이었다. 몸살이 몸이 살려고 신호를 주는 것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푹 쉬고 싶었으나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과부하에 걸린 몸이 휘청이자, 감각이 예민해지고, 감정이 출렁거렸다. 잊혔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기억들과 소화되지 못한 채 걸려있던 감정들이 몸 마음을 흔들었다. 어딘가 부서지고 깨진 몸 마음의 균형을 회복하는 데에는 며칠이 걸렸다.
숨과 마음을 고르며 일상을 회복해가면서 아래의 문장들에 공감을 하며 힘을 얻었다.
밤마다 그는 도토리 열매들을 꺼내 탁자 위에 펼쳐 놓고 좋은 놈들만 고른다. 금이 가지 않고 성한 것들만. 아픔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 중에서 건강하고 긍정적인 것만 선택해야 하는 것과 같다. 부서지고 금 간 감정들을 조심스럽게 골라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들이 인생의 자양분을 모두 빼앗아 가기 때문이다.
- 류시화, <새는 날아가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中
실제로 우리가 아프거나 우울할 때에는 안팎의 시야가 매우 좁아지고, 혼자인 듯 느껴진다. 그럴 때 내 안의 생명력과 사랑과 빛들이 새어나가지 않게, 부서지고 금 간 마음들을 골라내거나 메우며 작아진 몸과 마음을 환기하며 확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를 비난하거나 자책하는 목소리,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던 공포나 두려움의 순간들에 갇히지 않고, 악순환의 패턴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선언을 도끼 삼아 그 고리를 끊고 나와야 한다.
다음으로 와닿았던 건 예민함에 대한 글이었다. 예민함은 오래도록 내게 성가시고, 힘든 무엇이었다. 예민했기 때문에 작은 것에도 아프고, 다른 이들의 고통이나 상처도 마치 내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이 자비와 사랑의 씨앗이라는 말을 듣고서는 예민함을 사랑의 통로로, 삶을 더 깊고 풍부하게 느낄 수 있는 자원으로 받아들이고자 노력해왔다. 하지만 여전히 거칠고 빠른 세상을 살아가며 힘들고 버거운 때가 있다.
한 정신과 의사 선생님은 내게 '안테나가 매우 발달되어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지만, 건강하지 못할 때는 잡음이 많이 들리는 고장 난 라디오와 같은 상태가 될 수 있다.'라고 표현을 하셨다. 그 말씀처럼 때론 건강하지 못한 세상과 끔찍한 일들이 매일 일어나는 사회의 모습들에 고장 날 때가 있다. 하지만 더 이상 부서지고 깨진 상태로 오래 머물러 있지 않고자 손을 뻗는다. 이번엔 아래의 구절이 내 안의 틈을 메워주었다.
당신의 인생에서 실존적 우울과 심한 불안이 반복될지 모르지만, 어두운 시간을 지날 때마다 새롭게 정돈된 상태와 새로운 통찰, 예전과는 다른 존재 방식으로 혼란에서 벗어날 것이다. 그렇게 벗어나면서 살아 있는 느낌을 더 깊이 느끼고, 이상적인 자기 모습과 잠재력을 최대한 성취하는 데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 이미 로, <예민함이라는 선물> 中
이 구절을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거쳐왔던 수많은 우울과 불안과 혼란의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처와 고통에 머물지 않고, 끝내 생명과 사랑으로 나아가고 변형해가고자 했던 내 안의 힘과 지혜와 용기를 느낀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의 고운 햇살이 느껴지는 9월의 첫날, 고난 속에서도 사랑의 열매를 맺고 익혀가는 나 자신을 오랫동안 꼬옥 안고 토닥여주고 싶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