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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Apr 06. 2016

수요일의 무늬

언제 어디서라도 너를 찾아낼 방법

너희는 구름점으로 서로를 찾을 수 있어


어릴 적, 네모난 텔레비전에는 오래전에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사람들이 부둥켜안고 울고 있었다. ‘TV는 사랑을 싣고’나 ‘사람을 찾습니다’, ‘이산가족 상봉 특집 방송’ 같은 사람 찾기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엄마는 말했다. 나와 남동생, 우리 남매가 헤어진다면 구름점으로 서로를 찾으라고.


내 왼쪽 배에는 구름 모양의 점이 있다. 배꼽 옆으로 반 뼘쯤 떨어진 곳에 엄지손톱만 한 크기의 제법 큰 점이 붙어있다. 색깔이 옅어서 점이라기보단 일부러 동글동글 그려 넣은 무늬 같다.


그런데 똑같은 구름점이 내 동생에게도 있다. 배꼽을 중심으로 정확히 반대쪽, 오른쪽으로 반 뼘쯤 떨어진 곳에 구름 모양의 점이 있다. 우리의 구름점은 마치 데칼코마니를 찍어낸 것처럼 크기도 모양도 색깔도 꼭 같아서 정말 신기하다.


구름점 뿐만 아니다. 우린 각각의 흉터도 왼쪽과 오른쪽에 사이좋게 나눠 가지고 있다.


나는 왼쪽 이마와 왼쪽 정강이에 흉터가 있다. 세 살 때 기차에서 콩콩 뛰다가 창문 모서리에 부딪치는 바람에 왼쪽 이마가 찢어졌고, 열세 살 때 욕실에서 크게 넘어지면서 욕조 모서리에 왼쪽 정강이를 다쳤다.  


내 동생은 오른쪽 이마와 오른손가락에 흉터가 있다. 일곱 살 때 친구랑 싸우다가 돌멩이에 얻어맞아서 오른쪽 이마가 찢어졌고, 아홉 살 때 찬장에 과자를 꺼내 먹으려고 올라갔다가 싱크대 선반에 오른손가락을 다쳤다.


이토록 종잡을 수 없는 흉터의 역사 속에서 우리 남매는 몇 번이나 크게 넘어지거나 다쳐서 울고불고. 그래서 엄마 속을 들었다 놨다 했었다. 엄마는 마데카솔을 발라주며 ‘흉 지면 어떡하나. 깨끗하게 아물어야 할 텐데.’ 걱정했지만, 붕대를 감고 반창고를 붙이고 깁스를 해도 우린 다시 또 열심히 뛰어다녔다. 세상의 모든 모서리와 뾰족한 것들 따위 하나도 무섭지 않은 듯 아주 씩씩하게 살았다.



가끔은 터무니없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만약에 우리 남매가 떨어져서 서로를 찾아야 한다면, 나는 사람 찾는 방송에 나가야지.


“제 동생은 머리가 좀 크고요. 오른쪽 이마 위에 흉터가 하나 있어요. 슬쩍 보면 그냥 머리 가르마 같지만, 자세히 보면 흉터인 걸 눈치챌 수 있을 거예요. 얼마나 까불었는지 어렸을 때 친구랑 싸우다가 돌멩이로 얻어맞은 흉터예요. 그리고 오른손가락 중지와 약지에 볼록하게 꿰맸던 흉터가 있어요. 먹는 건 또 얼마나 밝혔는지, 과자를 꺼내려다가 싱크대 선반에 손을 비었어요. 아, 그리고 이게 제일 포인트인데요. 오른쪽 배에 구름점이 있어요. 엄지손톱만 한 옅은 구름 모양 점이에요. 여기, 저도 똑같은 점이 있어요. 잘 보세요.”


그리고 왼쪽 배에 구름점을 보여주는 상상. 구름점이 늘어나지 않도록 뱃살 관리를 잘해야겠는 걸. 나는 괜히 왼쪽 배를 통통 두드려보곤 했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 남매 왼쪽과 오른쪽에 똑같은 구름점을 심어준 엄마의 능력은 정말이지 굉장하다고 생각하면서.


달콤살벌했던 어린 시절을 지나 우리는 어른이 되었다. 그때 남겼던 흉터들은 시간을 덧발라, 거의 보일 듯 말 듯 옅은 무늬가 되었다. 이제는 주름인 척, 점인 척. 시치미 떼고 붙어있는 그 무늬들을 기억한다. 그건 우리 남매끼리만 아는 비밀 단서랄까. 사람 찾는 방송에서도 자신 있게 외칠 수 있는 너와 나의 연결고리랄까.  


알고 보면, 누구나 이상하거나 희한한 무늬 몇 개쯤은 가지고 산다. 넘어졌거나 다쳤거나 수술했거나, 아님 원래 그랬거나. 어땠든 간에 나는 그 비밀스런 무늬들이 좋다. 그건 당신이 씩씩하게 세상을 살아온 흔적이고, 아파도 꾸욱 참는 새에 솔솔 돋아난 새살이고, 부모님이 굉장한 능력을 발휘해 심어준 선물이기에 나는 당신의 흔적이 대견해 죽겠다. 그토록 특별한 당신이 좋다.


특이한 모양의 점이나 주근깨, 흉터나 짝짝이 눈 같은 당신의 무늬들. 이상하거나 패였거나 짝짝이인 그 무늬들이, 사실은 당신을 기억하는 비밀스런 단서들이라는 걸 알까. 그 사랑스러운 단서들을 고이 간직하고 싶다. 언제 어디서라도 당신을 찾아낼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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