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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Mar 23. 2018

울지 않는 어른

슬픔에 대처하는 어른의 마음

스물두어 살 땐 툭하면 울었던 것 같다. 아파서 울고, 헤어져서 울고, 술 마시고 울고, 서러워서 울고. 길거리나 지하철에서 속수무책으로 울기도 했다. 한창 울던 그땐 별 게 다 슬펐다. 내 슬픔도 네 슬픔도 그냥 다 같이 슬펐다. 전화 통화하다 울고, 친구와 껴안고 울고, 바닥에 쪼그려 앉아 울기도 했는데. 그렇게 한바탕 울고 나면, 슬픔이 비 온 뒤 하늘처럼 깨끗하게 사라져 있었다. 그래서 그 많은 슬펐던 이야기들이 기억나지 않나 보다. 울다가 모조리 잊어버려서.  


서른을 넘기고 나선 울 일이 별로 없다. 우는 게 부끄럽기도 하고 슬픔에 무뎌진 것도 같다. 처음으로 어른의 무게를 느끼던 무렵을 기억한다. 이리저리 치이고 서럽고 답답한 일들을 경험하던 나날들. 힘든 일은 너무 많은데 들어줄 이는 없고, 누군가 들어준다 해도 일일이 내 마음을 설명하기가 어렵고 버거워서, 나는 점점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마음을 삼키는 일에 익숙해진 탓일까. 나는 좀처럼 울지 않는 어른이 되었다. 눈물보다 한숨이 더 편한 어른이 되었다. 어쩌면 어른들이 울지 않는 건, 슬픔에 무뎌져서가 아니라 슬픔을 너무 많이 겪어서 다 설명하고 표현하기가 버거워서 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가장 슬픈 일은, 제 슬픔만 꾸역꾸역 삼키다 보니 타인의 슬픔을 헤아릴 여유가 없다는 거다.  


얼마 전엔 친구의 슬픈 이야기를 건네 들었다.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늘 웃고 다니던 유쾌한 친구. 웃는 얼굴은 너무 쉽게 믿으면 안 된다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친구는 슬픈 일을 겪고도 티 내지 않았다. 평소처럼 웃기만 했다. 웃는 얼굴 너머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채지 못해서 미안했다. 하지만 괜찮냐고 선뜻 물어볼 수 없었다. 내게 말하지 않았던 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섣부른 위로는 오히려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고. 짐작하는 나이가 되었다.


이런 게 어른의 마음일까. 슬픔도 위로도 너무 삼켜서 체할 것 같은 이 마음에도 언젠가 여유가 생길까. 내내 마음이 좋지 않았던 그날 저녁, 나는 좀 울고 싶다고 생각했다.


선우정아 ‘city sunset’ 뮤직비디오 이미지


나만 힘든 건 아냐. 모두 나름의 아픈
눈물 한숨 애써 숨기며 미소 짓지. 저 노을처럼.
그래, 오늘도 살아내야지. 지켜낼 것이 나는 참 많으니. 나로 인해 또 누군가가 아픈 게 난 싫어.
사실 오늘 하루도 버거웠지. 내 맘조차 지키지 못했는 걸. 초라한 발걸음 끝에 다 내려놓고 싶은 날.

- 선우정아 'City Sunset'​



+ 작가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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