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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Jul 14. 2018

파리 이야기

불행은 파리 떼처럼 몰려온다

파리 한 마리가 집에 들어왔다. 무언가 훅 날아들기에 벌인가 싶어 소리를 지르며 손을 내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식탁 모서리에 평온하게 착지해 토독 토독 걸어가는 파리. 도시의 아파트에선 오랜만에 보는 곤충이다. 파리 한 마리 때문에 이 요란을 떨다니 머쓱해졌다. 파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나는 유난히 파리가 싫다. 어떤 기억 때문이다. 


어릴 적 시골에 살았던 나는 기묘한 일을 경험했다. 어느 습한 여름. 한바탕 비라도 쏟아지려는지 하늘이 구물거리던 날이었다. 집안에 파리 떼가 몰려들었다. 몰려들었다고 해야 하나, 들이닥쳤다고 해야 하나. 언제 이렇게 날아들었지 싶은 파리 떼가 천장에 새까맣게 달라붙어 우글거리고 있었다. 


엄마는 담담했다. "파리를 잡아야겠다"며 엄마는 의자 위에 올라섰다. 파리채로 천장을 때리기 시작했다. 후두둑 후두둑 소리를 내며 방바닥에 파리가 떨어졌다. 나는 버둥거리는 파리들을 쓰레받기에 쓸어 담았고, 아직 어린 동생은 그것들이 신기한지 만지려 들었다. 그런 동생 손을 탁탁 쳐대며 나는 열심히 파리를 쓸어 담았다. 


엄마는 파리를 잡고, 나와 동생은 파리를 쓸어 담고. 수차례 그랬는데도 파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올려다본 새까만 천장은 구물 구물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주변엔 축사도 없었고 공기 좋은 산골이었는데... 분명 섬뜩할 정도로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별일 아닌 것처럼 종일 파리를 잡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랬던 우리가 더 이상했던 것 같다. 너무 어려서 이상함을 감지하지 못했던 걸까. 아무리 요란을 떨어도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아버린 걸까. 그 후로 파리 떼가 어떻게 되었더라 떠올려보면 선명한 기억이 없다. 그냥 며칠 뒤 아무 일 없었단 듯 화창해진 하늘처럼 우리 집 천장도 깨끗해졌다. 


'불행'이란 말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그날을 생각한다. 어째서, 왜, 얼마나, 오랫동안, 묵묵히. 징그러운 그것들을 치워내야 나아질까. 혹시나 우리 가족의 불행이 그때 들이닥친 게 아닐까 하고. 한동안 우리 가족의 불행도 그러했다. 언제인지 모르게 파리 떼처럼 들이닥쳐서 곁에 징그럽게 붙어있었다. 


도망갈 수도 떼어낼 수도 없는 그것을 아픈 몸처럼 껴안고 그냥 같이 살았던 것 같다. 그 후로 어떻게 되었더라 떠올려보면 어렴풋한 기억들뿐이다. 이제는 그때의 불행들을 우스갯소리로 꺼내 나눌 정도로 시간이 많이 흘렀다.  



언젠가 ‘불행’이란 말을 사전에서 찾아본 적 있다. 행복하지 아니하다는 뜻을 가진 ‘불행’의 반대말은, ‘행복’이 아닌 ‘다행’이다. 뜻밖에 일이 잘 되어 운이 좋다는 의미. 우습게도 사전을 찾아보다가 위로받기는 처음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처럼, 우리 삶은 뜻밖에 운이 좋은 순간보다 행복하지 아니한 날들이 훨씬 많다. 자잘하게 불행하고 지루하게 평범한 날들이 이어진다. 그래도 갑자기 파리 떼가 들이닥친다거나 하지 않는 오늘이 얼마나 평온한 날인지. 이만하면 그리 나쁘지 않은 매일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파리가 집안을 날아다닌다. 티브이 위에 소파 위에 옷가지 위에 착지했다가 걷고 멈칫하다가 다시 날고. 이번에는 어디에 내려앉을지 찾는 것처럼 허공을 날아다닌다. 불안하고 하찮은 날갯짓이 문득 가엽게 느껴졌다. 


겨우 파리 한 마리가 불행했던 기억을 불러왔다. 아무래도 싫은 곤충이다. 하지만 이제 파리만 한 불행 하나쯤 내려앉는다 해도 나는 상관없을 것 같다. 그건 불행도 다행도 아닌 평범한 하루에 지나지 않을 테니. 그보다 조금 더 불행해진다 해도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언젠가는 괜찮아질 걸 아니까. 다행이다 미소 지을 순간이 있을 테니까. 


우습게도. 징글징글한 불행이 깨끗이 사라진 순간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적당한 시간이 지나면 불행 또한 웃으며 추억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역시나 그랬던 걸까. 그날 파리나 잡자며 파리채를 들었던 엄마는 다 알고 있었던 걸까. 


나는 창문을 열어 파리를 내보내 줬다. 

불행하다 여겨서 미안. 파리는 조용히 사라졌다. 




@suri.s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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