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수리 Aug 25. 2018

네가 계속 글을 썼으면 좋겠어

그렇게 이겨냈으면 좋겠어

초등학생 5, 6학년 열두 명이 모인 글쓰기 수업을 다녀왔다.


수업 내내 무뚝뚝한 얼굴로 책상 바닥만 보던 한 아이가, 글 쓰는 시간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았다. 슬쩍 쓴 글을 보니 놀랄 정도로 좋아서 “글쓰기 좋아하니?”하고 물어봤다. 아뇨. 책 읽는 건 좋아해? 아뇨. 책 진짜 싫어요. 아이는 대답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글을 쓰는 걸까 궁금했다. 잠시 후 ‘1년 후 나에게 쓰는 미래 일기’라는 주제에 아이는 이런 글을 썼다.


너는 지금 충분히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어. 다시는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지마. 너는 괴로핌을 당해봤으니까. 육체가 아픈 건 나아지지만 마음이 아픈 건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지. 너는 절대로 다른 사람을 괴로피지마.


마음이 저릿했다. 아이가 글을 잘 쓰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선생님은 네가 계속 글을 썼으면 좋겠어." 나는 아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해주었다. 아이는 '감사합니다' 조그맣게 대답했다. 아이를 생각하며 어느 드라마의 내레이션을 떠올렸다.


'오늘 나는 저들을 위해 기도한다. 비바람 따위 맞지 않기를. 어찌할 수 없는 일은 겪지 말기를. 답답하고 지루하더라도 평탄한 삶을 살기를. 그리고 또 나는 기도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을 겪었다면 이겨내기를. 겁나고 무섭더라도 앞으로 나아가기를. 있는 힘을 다해 그날의 내가 바라는 지금의 내가 되기를.'


나는 아이들이 아주 작은 아픔조차도 겪지 않고 자랐으면 좋겠다. 그러나 이 세계를 살아가는 한, 아이들은 때때로 상처받고 어쩔 수 없는 불행을 겪을 수도 있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만일 그런 일을 겪었다면, 이겨내기를 바란다. 아팠던 만큼 단단해지기를. 아파본 만큼 타인을 소중히 여기기를. 무엇보다도 그 시간을 견뎌낸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를. 나는 아이가 계속 글을 썼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상처를 주는, 사람이었구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