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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Sep 05. 2018

어떤 산책

어딜 그렇게 가고 싶으셨어?

손잡고 사이좋게 걸어오는 백발의 부부를 보았다.


가까워질수록 좀 이상했다. 남편은 맨발이었다. 런닝셔츠에 트렁크 팬티만 입은 채로. 모두들 흘깃 보며 지나가는데 아내는 미소 짓고 있었다.


"어딜 그렇게 가고 싶으셨어?"


남편의 손을 꼬옥 붙잡고 발걸음을 맞춰 걷는 아내. 허공을 응시하는 남편은 아무 대답이 없다. 늙은 아내의 다정함이, 늙은 남편의 고요함이.


산책하듯 천천히 걷는 부부 곁을 못 본 척 빠르게 지나쳤다. 그들에게서 햇볕에 바짝 말린 빨래 냄새가 났다. 새하얀 런닝셔츠 같기도 한, 새하얀 머리칼 같기도 한, 바짝 마른 새하얀 냄새. 핑, 가슴 언저리에 무언가 퍼져나갔다.


가을볕이 따스했다.

부부에게 이 가을이 천천히 지나가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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