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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Dec 16. 2018

원식

슬픔과 분노에 관한

오늘은 음반 하나를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오래되기도 했고, 상업적인 성공을 크게 거두진 못한 음반이지만 왠지 오늘 나눌 이야기와 맞닿아 있단 느낌이 들었거든요. 소개해 드릴 음반은 이소라의 3집 앨범입니다.


이 앨범에는 총 10개의 곡이 담겨 있어요. 흥미로운 건 전반부와 후반부의 분위기가 극명하게 나뉜다는 점인데요. 전반부는 무겁고 슬픈 발라드곡이, 후반부에는 거친 록 음악, 심지어는 헤비메탈이 섞인 곡들도 등장합니다. 들어보시면 좀 생경하실 수도 있어요.


원래 알고 있던 이소라의 이미지와는 다른 느낌이실 수도 있어요. 그래서 그런지 유명한 히트곡들이 실린 이소라의 다른 앨범들과는 다르게 이 앨범은 생각보다 그리 흥행하진 못했지요. 아마도 앨범에 실린 대부분의 곡들이 무겁고 어둡기 때문이었을까요. 앨범의 제목은 ‘슬픔과 분노에 관한’입니다.


앨범의 첫 곡이자 이 앨범의 타이틀 곡의 제목은 ‘믿음’입니다. 전 개인적으로 이 앨범 참 타이틀 곡을 잘 정했다 생각해요. 슬픔도 분노도 모두 믿음의 무너짐에서 시작하니까요. 무너진 믿음에 대한 좌절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때론 분노도, 때론 슬픔도 되는 것 같아요. 슬픔은 무너진 믿음을 되돌릴 수 없어 무력해지는 것. 그리고 분노는 무너진 믿음을 되돌려 놓으라고 울부짖는 것.


잠시 제 얘기를 하자면, 저 역시도 그랬던 것 같아요. 같이 살던 할머니가 돌아가셨을때, 학창 시절 좋아하던 친구의 마음을 얻기 위해 오랜 시간 애썼지만 사람의 마음은 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약속했지만 끝내 이루지 못하게 되었을 때.


할머니는 늘 곁에 계시리란 믿음, 나와 친한 저 아이는 내가 좋아하는만큼 나를 좋아하겠지라는 믿음, 결혼을 약속했던 두 사람은 어려움 앞에서도 서로를 믿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란 믿음. 삶의 순간순간 그런 믿음들이 깨어졌을 때 그때마다 저는 무력해졌고 슬픔을 느꼈어요.


반면 분노한 적이 있었나를 돌이켜보면 그런 기억은 잘 떠오르지 않는 것 같아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좌절을 마주하게 될 때 남에게 화내기 보다는 나 자신을 탓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참 젠틀하고 나이스했던 것 같아요. 그게 멋있고 성숙한 거라 생각했었죠. 어린 시절엔...


하지만 살다보니 그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더군요. 표현되지 못한 분노는 그 크기 만큼의 슬픔으로 변하더라구요. 그 속엔 자책과 무기력함이 있었죠. 부자유스러웠어요. 그로 인해 상대방은 마음 편했을지 모르지만 나 자신은 답답했어요. 그제서야 느꼈죠. 아 이런 슬픔은 나를 되려 옭아매는구나.


다시 음반 얘기로 돌아와서, 그렇기에 저는 이소라 3집의 생경한 후반부를 좋아합니다. 슬픔의 뒷면에 맞닿아 있는 분노가 생생하게 느껴져서요. 이소라는 자신이 이별을 경험할 때마다 앨범을 발매한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데요. 이 앨범이 상업적 성공을 거두진 못했지만 아마도 그녀 자신에겐 무엇보다 소중했던 회복의 계기이지 않았을까요?






<마음 쓰는 밤> 원식님의 글을 공유합니다.

슬픔과 분노가 믿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그리고 슬픔과 분노가 서로 맞닿아 있다는 것. 우리는 자신의 감정에 대해 이렇게 깊이 헤아려본 적 있었을까요. 미리 알았다면 지금보다는 더 괜찮은 시간을 지나왔을까요.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이소라의 '믿음'을 들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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