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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Feb 28. 2019

나리

나는 사랑으로 자랐다

나는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이 더 분명하고, 긍정보다는 부정이 더 뚜렷한 사람이다. 이를 테면 저녁 반찬으로 뭘 먹고 싶은지 답하는 것보다 먹기 싫은 것을 골라내는 편이 빠르다. 어릴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사진 찍는 것을 싫어했는데, 유년시절의 몇 안 되는 사진을 찾아보면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죄다 볼이 퉁퉁 부어있거나 미간에 주름이 가득 차 있다.


나의 이런 부정적인 성향은 사춘기를 맞이하는 고등학교를 들어가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당시의 나는 사람이 싫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함께 등교를 하던 친구들을 싫어했고, 같이 점심을 먹던 친구들도 싫어했으며, 길 가다 지나치는 모르는 사람까지도 온갖 이유를 붙여 싫어했다. 어쩌다 친구들의 대화에 끼게 되면 고개만 끄덕끄덕. 속으로는 미래에 대한 고민 없이 연예인이나 남자친구 이야기에 열을 올리는 친구들을 한심하게만 여겼다.


그때 나는 중학교 때 어울리던 친구들과 멀어지게 되면서 아무도 나를 좋아해 주지 않을 거라고 겁먹고 누구와도 가까워지려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사람들과 마주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혼자 첫차를 타고 등교를 하고 급식을 먹지 않거나 쉬는 시간엔 늘 자는 척을 했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이런 나의 못난 생각들과 학교생활에 대한 불만의 종착지는 언제나 엄마였다.


밤 열한 시가 되면 가게 정리 돕는다는 핑계로 엄마의 슈퍼로 향했다. 선반 위 작은 텔레비전 소음을 배경으로 오늘은 무슨 짜증 나는 일이 있었는지, 누가 자꾸 내 신경을 건드는지, 학교 생활이 얼마나 지루한지. 그런 철딱서니 없는 이야기를 엄마 옆에 늘어놓곤 했다. 엄마는 매번 반복되는 이야기에도 항상 처음 듣는 것처럼 호응과 격려와 위로를 적절히 분배해가며 나의 못난 감정을 풀어주기 위해 애썼다.


그날도 어김없이 슬리퍼를 끌고 엄마에게 갔다. 평소와 다른 엄마의 기색은 이미 가게를 들어설 때부터 느껴졌지만 모른 척 자리에 앉았다. 반응이 없는 엄마에게 심통이 나서 그랬는지 나는 유난히 더 과장된 감정을 쏟아냈다. 무슨 일이었는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도 저녁에 온 가족이랑 한바탕 했던 것 같다. 나는 아빠가 싫어, 동생도 싫고 언니도 정말 짜증 나. 우리 가족 너무 싫어!


폭풍처럼 쏟아지는 내 짜증을 가만히 듣고만 있던 엄마가 자리에서 일어나 간판 불을 껐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나리야, 엄마가 너를 사랑으로 키웠어. 앞으로도 사랑으로 키울 거야.”


엄마의 말보다 엄마의 지친 얼굴이 내 말문을 막았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게를 정리했다. 그때 내가 엄마에게 더 이상 말을 꺼낼 수 없었던 건, 미안해서였다는 것을 한참 후에야 깨달았다.


지금도 나는 좋은 것보다 싫은 것이 더 많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여전히 어렵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나는 사랑으로 자란 사람이라고.








<마음 쓰는 밤> 나리님의 글을 공유합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자란 사람. 어느 작가는 '살아가는 데 그리 많은 불빛이 필요한 건 아니다'라고 말했죠. 사는 게 낯설고 어렵고 지칠 때, 받았던 사랑을 기억해요. 나를 살게 한 희미하지만 반짝이는 사랑 하나. 그 사랑이 우리를 이만큼 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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