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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Mar 20. 2019

안아주는 마음

나는 더 잘 살고 싶어진다

팔이 네 개였으면 좋겠다고. 아이 둘을 길러본 엄마라면 한 번쯤 이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싶다. 엄마가 되어 내가 가장 많이 한 일은 안아주는 일이었다. 둘이 아니라 하나라면 온종일 엄마 품에 안겨있을 수 있었을 텐데... 어떻게든 더 온기를 나눠주고 싶어서 틈만 나면 안았다. 팔이 두 개인 게 미안했다.


쌍둥이 두 아이가 조그마한 아기였을 땐 양 팔에 하나씩 안고 젖 먹이고 트림시키고 놀기도 하고 재우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제법 어린이 티가 나는 녀석들을 동시에 안기는 어렵다. 가만히 안겨있는 것보다 뛰어노는 게 훨씬 재밌어진 아이들은 엄마 품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열심히 놀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 엄마를 발견하곤 도도도도 달려와 안겨오는 아이들을 나는 그냥 꼬옥 안아줄 뿐이다.


이젠 팔이 두 개여도 충분하고, 만성통증에 시달리던 어깨와 등도 예전처럼 아프지 않다. 그런데 양 손이 머쓱하고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 가끔 두 아이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한다. 아이들은 쑥쑥 자란다. 아무래도 가장 아쉬운 건 품에 안는 일이 줄어드는 것. 폭 안기는 지금의 품도 몇 해 지나면 달라질 것이다. 아이들이 조금만 천천히 자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두 아이가 태어난 지 백일도 되지 않았을 때. 친정엄마와 하나씩 안고 잠을 재운 밤이 있었다. 이불을 여러 겹 깔아 둔 방 안에 작은 주홍색 등을 켜고, 우리는 아기를 안고 등을 토닥이며 춤을 추듯 느릿느릿 움직였다. 엄마가 말했다.


"아기를 안을 때가 가장 행복해. 가장 충만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그마한 아기의 머에 얼굴을 묻었다. 말랑한 머리에서 도곤도곤 심장이 뛰었다. 보드라운 머리칼에선 젖 냄새와 비누냄새가 뒤섞인 아기 냄새가 났다. 품에 안긴 작은 몸이 너무나 따뜻했다. 누군가 사랑의 풍경을 그려보라면 나는 지금 이 순간을 그려보리라 생각했다. 충만하게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 아이를 낳기 전까지 나는 안아주는 일이 이토록 따뜻한 행동인지 몰랐다. 사랑하는 일이 이토록 벅찬 일인지 몰랐다. 아이를 안는 것만으로 나는 행복해졌다.

  

얼마 전에는 엄마를 안아보았다. 아주 오랜만이었다. 잠든 아이들 발치에 웅크려 누워있는 엄마를 발견했다. 엄마는 한쪽 팔에 머리를 베고 모로 누워, 작은 발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엄마. 불러보려다 말고 나도 곁에 누웠다.

 

"발이 어쩜 이렇게 조그맣니. 이 발로 어디를 걸어 다닐 까나."


엄마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런 엄마가 너무 쓸쓸해 보여서 나는 어렸을 때처럼 엄마 품에 파고들었다. 엄마 냄새는 여전했다. 엄마가 잔잔히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 딸 오랜만에 안아보네. 아직도 애기 같은 게 애 둘 엄마라고. 참... 시간 빠르다."


아이를 '안아준다'였다가, 아이가 '안겨온다'. 그리고는 결국 아이를 '안아보았다'로 변하는 것일까. 엄마에게 '안아준다'는 말은 이토록 아릿하게 바래버리고 마는 말인 걸까. 오랜만에 서로를 안아본 우리는, 잠시간 어색하고도 서글픈 온기를 나눠가졌다.

 

표현이 살가운 딸이 아닌 나는, 엄마를 안아준 적이 얼마 없었다. 돌아보니 일 년에 몇 번. 아니 그보다도 더 조금. 그사이 엄마는 나보다 작아져 있었다. 엄마 품에 안겨 가만히 눈을 감고서 나는 직감했다. 점점 어른처럼 커지는 아이들을 품에 안으며, 점점 아이처럼 작아지는 엄마를 품에 안으며 나는 자주 마음이 아플 것이라고.


그럼에도 나는 더 많이 안아주고 싶다. 하고픈 말이 많을수록 말문이 막혀버리는 마음을, 주고픈 마음이 넘칠수록 어찌할 줄 모르는 마음을 이제야 알 것 같아서. 사랑한다는 말로도 다 설명하지 못하는 이 마음을 전해주고 싶을 때마다 나는 두 팔을 벌려 아이들을, 엄마를 안아줄 것이다.


아이를 안을 때, 그리고 엄마를 안을 때.

나는 더 잘 살고 싶어진다. 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보고 싶어진다.


너희들이 한 품에 안기는 조그만 아기였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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