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난 네가 내 지지대 같다는 생각을 해
안녕, 지현.
주섬주섬 아무 말을 꺼내다가도, 마음에 생채기를 남기는 이들에 대해 사뭇 진지하게 터놓고는 또다시 까르르 대는 우리를 떠올리며 이 글을 시작해볼까 해.
어제 네가 이사 간 동네에 놀러 가는데 지하철 창밖으로 한강이 보였어. 집 근처에 한강이라니, 이보다 낭만적일 수 없지 싶더라. 강을 좋아하고 그 곁을 따라 걷는 것도 좋아하는 너를 그리며, 이곳은 더 이상 서울의 한 강이 아닌 강지현의 강으로 나에겐 의미가 달라질 거라는 생각도 했어.
대학원에 처음 입학했을 때, 아는 이 하나 없는 낯선 동네 낯선 학교에서 다소 뾰루퉁하게 있던 나를 기억해? 한참 뒤에 서로의 첫인상이 별로라 저 사람과는 친해지기 어렵겠다 싶었다며 술 한 잔에 흘려보낸 시간도 기억나겠지. 그 날의 너와 나 사이에 햇수로 3년이라는 시간이 쌓여 우리가 되었어. 우리를 만든 수많은 시간 속의 대화들은 20대 후반의 나를 성장시킨 대부분의 자양분이야.
좋고 싫음으로 가벼이 채워졌던 내 삶이 이해와 포용으로 물든 것은 너의 영향이 가장 크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 사람에게 멋대로 기대하고, 이내 실망하는 것을 반복하던 나에게 기대를 덜고 상대 그 자체에 집중해야 함을 또렷하게 말해주던 너를 기억해. 대화를 시도하지 않은 채 관계에 괴로워하며 도망가려던 나를 붙잡고, 혼자만의 상상으로 관계를 철회하는 것은 결코 내가 행복해질 수 없는 태도란 것을 알려준 것도 너였잖아.
그래서 말이지 가끔 난 네가 내 지지대 같다는 생각을 해. 발을 딛고 섰을 때 덕분에 안정적인 땅을 밟고 있는 느낌이 들거든.
앞으로의 시간을 감히 상상하지 않을래. 너는 너의 몫을 하고, 나는 나의 몫을 하며 가끔 함께의 시간에 최선을 다하며 그렇게 지내자. 우리를 구원하는 건 사랑이라고 외치는 너를 사랑해. 나의 대학원 시절의 구원자, 나를 구원한 건 너에 대한 나의 사랑이었음을. 우정보다 사랑이 크고 깊은 거라면 나는 너를 그렇게 사랑하고 있어. 나의 사랑, 나의 친구.
민채
<마음 쓰는 밤> 민채님의 글.
"가끔 난 네가 내 지지대 같다는 생각을 해."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 당신에게는 있는지요.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줄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어렵지만, 이 글을 읽고 한 번 더 믿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건 사랑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