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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Apr 15. 2019

저한텐 사과하지 않으셔도 돼요

어떤 이의 하루의 몫

자주 가는 카페가 하나 있다. 역사 바로 앞에 위치한 2층짜리 프랜차이즈 카페. 1층에선 주문만 받고 2층에 넓은 좌석이 있다. 일인용 노트북 자리도 많아서 혼자 작업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 커피도 맛있고 디저트도 다양하고. 주말 이른 시간에 노트북을 들고 갈 만한 카페 중에는 가장 빨리 열고 가까워서 나는 자주 여길 찾는다. 여러모로 이 카페는 장사가 잘 되는지 주말 오전에도 사람들이 줄 서서 커피를 기다리곤 한다.


어느 일요일, 카페에 글을 쓰러 갔다. 애초 가던 시간보단 조금 늦은 시간이라 사람들이 더 많았다. 주문하고 커피를 기다렸다. 그런데 누군가 팔을 툭 쳤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하고.


돌아보니 허리가 꼬부라진 할머니 한 분이 상자 더미를 끌고 있었다. 아무래도 좁은 공간이라 사람들을 헤집고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는 상자 더미가 무거워서 들지 못하고 질질 끌고 있었다. 이미 여러 명에게 부딪히고 온 모양인지 할머니를 보는 시선들이 따끔하다. 팔짱을 낀 채 얼굴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었다. 


“문밖으로 가져가면 돼요?” 


할머니의 상자를 맞잡았다. 나조차도 무거워서 들 순 없었고 그냥 끄는 걸 도와드렸다. 카페에서 버리는 상자를 가져가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나 보다. 요즘처럼 폐지 줍기 힘든 때에 멀쩡한 상자를 많이 가져갈 수 있다는 건 할머니에게 아주 중요한 일일 터. 이른 시간에 상자를 가지러 왔지만 장사가 잘 되는 카페다 보니 예상치 못한 많은 사람을 맞닥뜨린 것이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내가 나이가 많아서.”


할머니는 연신 사과를 했다. 어서 카페를 빠져나가고 싶지만 허둥대는 걸음이 좀처럼 나아가지 못했다. 괜히 내 마음이 불편했다. 까닭 모를 화도 났다. 할머니 왜 이렇게 힘든 일 하세요? 묻고 싶었지만 꿀꺽 삼키고 “저한텐 사과하지 않으셔도 돼요” 말했다.    


예전에 고물상을 취재한 적이 있다. 신림동 마지막 달동네에 있는 고물상이었다. 달동네에 사는 독거노인들의 생계는 대부분 폐지 줍기다. 종일 폐지를 주워 고물상에 가져가면 무게를 달고 돈을 받는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주워온 폐지는 양이 많지 않고, 고물상 입장에서도 남는 장사가 아니라서 그리 달갑지 않다.


내가 그 고물상에 취재를 갔을 땐, 한겨울이었다.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노인들이 폐지를 들고 찾아왔다. 동네 토박이인 고물상 아저씨는 10kg도 안 되는 무게를 보고도 “오늘 많이 주워오셨네.” 씨익 웃으며 돈을 더 쳐줬다. “추운데 커피라도 드시고 가셔.” 자판기 커피도 뽑아주었다. 그럼 노인들은 고맙네 인사하고 문간에 앉아 볕을 쬐며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


그 모습을 보고 난 후론 길가에 손수레를 끌고 가는 노인도,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노인도 너그럽게 바라보게 되었다. 어떤 이들은 먹고살기 위해 이런 일을 한다. 그나마도 1kg에 120원 하던 폐지 값이 30원까지 떨어졌다는 기사를 읽었다. 한 수레 가득 실어야 30kg 남짓, 1,000원을 벌면 다행이다. 하루를 꼬박 일해도 4,000원을 못 번다.


할머니는 골목 한편에 바짝 붙어서서 손수레에 상자를 실었다. 나는 커피를 받아 2층으로 올라갔다. 온풍이 도는 공간에 재즈가 흐르고 있었다. 볕이 잘 드는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열고 커피를 마셨다. 통유리 너머로 이제야 천천히 손수레를 끌고 가는 할머니가 보인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거린다. 스카프를 매고 잘 차려입은 할머니 한 분이 스쳐 가는 할머니를 돌아본다.


소설 《백의 그림자》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홀로 사는 할머니가 종이 박스를 줍는 일로 먹고산다는 것은 애초부터 자연스러운 일일까.’ 그러다 문득 내가 마시고 있는 캐러멜 마키아토 한 잔이 5,600원이란 사실을 깨닫고 부끄러워졌다. 어떤 이의 하루의 몫보다도 비싼 커피를 나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마시고 있었다.


그날은 글 한 줄도 제대로 쓸 수 없는 하루였다.


일러스트 (c) 수명


굽은 허리가

신문지를 모으고 상자를 접어 묶는다.

몸뻬는 졸아든 팔순을 담기에 많이 헐겁다.

승용차가 골목 안으로 들어오자

바짝 벽에 붙어선다

유일한 혈육인 양 작은 밀차를 꼭 잡고.


고독한 바짝 붙어서기

더러운 시멘트 벽에 거미처럼

수조 바닥의 늙은 가오리처럼 회색 벽에

낮고 낮은 저 바짝 붙어서기


차가 지나고 나면

구겨졌던 종이같이 할머니는

천천히 다시 펴진다.

밀차의 바퀴 두 개가

어린 염소처럼 발꿈치를 졸졸 따라간다.


늦은 밤 그 방에 켜질 헌 삼성 테레비를 생각하면

기운 씽크대와 냄비들

그 앞에 선 굽은 허리를 생각하면

목이 멘다

방 한구석 힘주어 꼭 짜놓았을 걸레를 생각하면.


- 김사인 〈바짝 붙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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