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수리 Apr 08. 2019

추운 삶을 견디게 해준 시(詩)

그 겨울, 엄마가 우리에게 주었던 것

한낮. 거실 블라인드를 올리다가 쏟아지는 햇살에 멈춰 섰다. 감탄사처럼 어떤 문장 하나가 떠올랐다.

 

먼 데서 봄이 온다.


‘먼 데서’라는 말이 인상 깊다고 생각했던 문장이었다. 어디서 봤더라 더듬어보았지만 기억나지 않았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모처럼 하늘이 맑았다. 이렇게 하늘과 가까이 사는 것도 행운일지 몰라. 블라인드에 걸린 해가 눈부셨다. 먹먹해진 시야가 제 색깔을 찾는 사이 어떤 글자들이 떠올랐다. 먼 데서 봄이 온다.

생각났다.

커튼이었다.




스물두 살 무렵 대학생이 된 남동생과 함께 살게 되었다. 동생 학교 가까이에 집을 얻었다. 한쪽 벽면이 여러 개의 창문으로 뚫려 있는 원룸이었다. 현관문을 열면 하늘이 먼저 보였다. 창문 없는 고시원에서 살아봤기에 나는 단박에 그게 맘에 들었다. 서울에서 창문 있는 집에 사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인데 창문마다 하늘을 마주한 집이라니. 바로 계약했다. 우리는 저렴한 가격에 좋은 집을 얻었다고 좋아했다.


그러나 살아 보니 이렇게나 웃풍이 센 집이 없었다. 잘 때마다 코끝이 시렸다. 알고 보니 그곳은 사무실을 개조해 만든 원룸이었다. 그냥 둘러보기엔 깔끔했지만, 사방에서 바람이 숭숭 새고 벽지며 바닥이며 시공이 형편없었다. 얼음장 같은 바닥은 보일러가 들어오는 한쪽 구석만 심하게 뜨거워서 까맣게 그을렸다. 너무 추워서 이불을 깔아두고 살았다. 그래도 이 도시에서 우리 둘 건사할 수 있는 보금자리 있는 게 어디냐며 감사하게 살았다.


겨울을 앞두고 엄마가 올라왔다. 집을 처음 본 엄마는 가만히 둘러보기만 할 뿐 말이 없었다. 이사라면 물릴 만큼 다녀본 우리 엄마. 첫눈에 어떤 집인지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별다른 말이 없었다. 창문 가까이에 얼굴을 대고 ‘도시에서도 이렇게 하늘을 볼 수 있네’ 하고 웃을 뿐이었다. 이불을 둘둘 말고 셋이 달라붙어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해가 내리쬐는 창문을 보며 엄마는 말했다.


“아무래도 커튼은 있어야겠다.”


엄마는 눈곱도 안 뗀 우리에게 한지와 유성 매직을 사 오라고 했다. 사 온 한지를 창문에 대고 너비를 가늠하더니 이걸로 커튼을 만들 거라고 했다. 엄마는 방바닥에 한지를 깔더니 이렇게 말했다.


우리, 여기에 시를 쓰자.


웃음이 터졌다. 역시 우리 엄마야. 우리 어렸을 때도 엄마는 집 안에 시를 적어 붙여두거나, 말린 꽃이나 갈대를 꽂아두거나, 종이로 무언가 만들어 붙이거나, 아크릴 물감을 알록달록 칠하거나 그랬다. 오래되고 낡은 것들 곁에 그냥 그렇게 두었다. 나는 그런 엄마의 손길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잡지에 나오는 것처럼 세련된 집은 아니지만, 낡고 해진 자리마다 엄마의 손길이 어우러진 집에서 우리는 살았다.

 

고분고분 엄마 말을 따르기로 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마주할 테니 따뜻한 시를 쓰자고 했다. 엄마, 나, 동생이 좋아하는 시를 골랐다. 엄마는 나에게 매직을 내밀었다. 우리 셋 중에 그나마 네 글씨가 예쁘니 네가 쓰라고. 우리는 바닥에 바짝 엎드려 시를 쓰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시를 불러주고 한 사람이 간격을 봐주고 한 사람이 글자를 썼다. 그렇게 네 편의 시를 썼다.


황동규 〈즐거운 편지〉

김종해 〈그대 앞에 봄이 있다〉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김용택 〈꽃〉


시를 모두 적었을 때 엄마는 냅다 한지를 구겨버렸다. 너희도 같이 해. 우리도 엄마를 따라 시가 적힌 한지를 구겼다. 조물조물. 시를 만지는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다시 펼쳐본 한지는 뭔가 독특한 분위기를 풍겼다. 까슬한 종이 질감 위로 글자들이 만져질 듯 구불구불했다. 엄마는 이걸 창문에 붙일 거라고 했다. 동생과 나는 의자 위에 올라가 한지 양 끄트머리를 붙잡았다. 엄마가 적당한 위치를 봐주고. 창문마다 한 장씩 시를 붙였다.


그렇게 완성된 우리의 시(詩)커튼. 아침밥도 안 먹고 한바탕 난리를 치른 우리는 방바닥에 벌렁 누워버렸다.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이 보였다. 햇살을 머금은 한지 위에 까만 글자들이 어룽어룽 춤을 췄다. 시인이 열여덟에 썼다던 애틋한 연서가, 꽃 필 차례가 그대 앞에 있다는 위로가, 흰 당나귀 응앙응앙 우는 사랑의 풍경이, 내가 돌아누우며 네 손을 더듬어 찾는 줄 알라는 당부가. 하늘에 걸려 있었다.


“예쁘다.”


그걸 바라보는 우리는 알고 있었다. 곧 다가올 겨울, 한지 몇 장으로 추위를 막을 순 없다. 커튼 살 형편은 안 되니 우리는 이대로 겨울을 나야 할 것이다. 그래도 좋았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우리 셋 손길이 닿은 시가 하늘에 걸려 있을 것이다. 읽고 또 읽겠지. 겨우 몇 줄의 문장에 불과한 글자들이 우리에겐 따뜻함이 되겠지. 시를 껴안고 쏟아지는 햇살이 나른했다. 우린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밥은 미루고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 긴 늦잠을 잤다.


일러스트 (c) 수명


그해 겨울, 동생과 나는 춥지만 따뜻하게 살았다. 찬바람에 날마다 새파랗게 시린 하늘을 올려다보며, 나는 김용택의 〈꽃〉을 자주 읊조렸다. 그리 유명한 시는 아니었지만 읽을 때마다 마음 언저리가 뜨거워졌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김용택의 〈꽃〉은 내게도 익숙한 시가 아니었다. 누가 어떻게 고른 시였는지도 한참 지난 일이라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 집에 시집이 있어 거기서 골랐던 걸까 짐작할 뿐. 그런데 익숙하지도 않은 시의 한 구절이 아직도 내 마음에 남아 있었다. 먼 데서 봄이 온다. 〈꽃〉의 마지막 구절은 ‘첫봄이 먼 데서 겨울을 이기며 온다’였다.


김용택의 〈꽃〉을 다시 찾아 읽었다. 이불 속에 껴안고 누워 있던 우리 셋이 떠올랐다. 금세 서늘해진 공기에 거실 창문을 닫았다. 햇살은 이렇게나 따스한데 겨울은 아직 힘이 세다.


블라인드를 내렸다. 드르륵. 하얀 블라인드가 소리를 내며 내려왔다. 이 하얀 공간 위에 시가 쓰여 있었지. 그때 하늘에 걸려 있던 시가 지금까지도 내 마음에 걸려 있던 거구나. 엄마가 우리에게 주었던 건, 추운 바람을 막아주는 커튼이 아니라 추운 삶을 견디게 해준 시였다. 나는 나지막이 읊조려보았다. ‘첫봄이 먼 데서 겨울을 이기며 온다.’


언제나 그랬듯 모든 게 괜찮을 것이다.

언제나 처음인 듯 반가울 것이다.

그렇게, 봄이 올 것이다.




그대 잠 못 들고 뒤척일 때 꽃 지는 소리 들린다

다시 돌아눕는 그쪽이 두렵다 무서워 다시 찾는 쪽도

꽃 지는 소리 무섭다

어둡다 어둠 속에서도 눈 감으면 어디선가 아픈 숨소리 들린다

그러면 또다시 내가 돌아누우며 네 손을 더듬어 찾는 줄 알라

우리들의 잠마저 이리 아프고

어디로 돌아눕든 각 진 돌멩이 맨살에 박힌다

친구여

어디로 돌아누울 곳 없어 이렇게 발끈 쭈그려 앉은

이 무서움 속에서

어디선가 우리를 부르는 새벽닭 울음소리를 듣자

어둠 속에 뜬 눈이 꽃처럼 아프다


첫봄이 먼 데서 겨울을 이기며 온다.


- 김용택 〈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