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고수리 Apr 29. 2019

우리는 눈물 흘릴 자격도 없다

너무나 염치없으므로

오전 내내 엄마와 통화가 되지 않았다. 부지런한 우리 엄마 청소하거나 목욕하러 갔겠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오후에 아이들 간식 먹이고 커피 한 잔 마시려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엄마 교통사고 당했어.” 엄마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엄마, 무슨 일이야? 괜찮아?”

“잠깐만. 이따가 다시 전화할게.”


통화는 다급하게 끊어졌다.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다쳤을까. 어디가 얼마나. 괜찮을까. 엄마 혼자서 괜찮을까. 아. 지금 내가 뭘 해야 하지. 재차 전화를 걸었지만 엄마는 받지 않았다.


이럴 땐 정말 엄마가 가까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동차로 달려간다 해도 네 시간이 훌쩍 넘는 먼 데 말고, 문 열고 뛰어가면 바로 얼굴 볼 수 있는 코앞에 살았으면 좋겠다. 그게 아니면 엄마 옆에 누구라도 있었으면, 믿고 챙겨줄 누군가 있었으면 좋겠다.


무작정 휴대폰만 붙들고 기다리는 동안 온갖 불행한 상황들이 떠올랐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손톱만 물어뜯고 있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많이 다친 건 아니라며 병원에서 검사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엄마, 왜 바로 전화 안 했어? 나도 있고 동생도 있고.”

“모르겠어. 그냥 아무한테도 전화를 못 하겠더라….”


골목을 빠져나오던 차 한 대가 엄마 차를 보지 못하고 운전석을 들이받았다.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엄마는 운전석에 머리를 세게 부딪쳐 입안이 다 터졌다. 아픈 것보단 온몸이 덜덜 떨려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보험 처리를 한 후 바로 병원으로 달려왔다고 했다.


“검사 결과 봐야 알겠지만 입원해야 할지도 모른다네.”

“엄마. 그럼 내가….”

“됐어.”


엄마가 재빨리 내 말을 가로막았다.


“애 둘 딸린 엄마가 어딜 내려오려고.”

“그럼 간호는 누가 해?”

“간병인 쓰면 돼. 괜찮아.”

“그래도….”

“됐다니깐. 애들 운다. 얼른 달래줘라.”


아이들도 심상찮은 분위기를 느꼈는지 서럽게 울었다. 엄마, 그럼 검사 다 받고 알려줘. 전화를 끊고 아이들을 달래는데 뭐라 설명 못 할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검사 결과 다행히 큰 이상은 없다고 했다. 입원하지 않아도 된다는 엄마의 말을 듣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 다 식은 커피를 들이켜고 방바닥에 주저앉았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그런데 긴장이 풀리자마자 불현듯 엄청난 감정이 달려들었다. 나, 엄마에게 ‘내가 갈게’ 그 한마디를 대꾸하지 못했다.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자괴감이 몰려왔다.


언젠가 엄마랑 같이 봤던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암에 걸린 엄마와 여행을 떠난 딸이, 화장실 거울 앞에서 제 뺨을 때리는 장면. 그때 이런 내레이션이 흘렀었다.


“엄마의 암 소식을 처음으로 전해 들으며, 나는 그때 분명히 내 이기심을 보았다. 암 걸린 엄마 걱정은 나중이고, 나는 이제 어떻게 사나. 그리고 연하는 어쩌나…. 난 오직 내 걱정뿐이었다. 그러니까 장난희 딸 나 박완은. 그러니까 우리 세상 모든 자식들은 눈물을 흘릴 자격도 없다. 우리 다 너무나 염치없으므로.”


결국에는 나도 그런 자식이었던가. 오늘 나는 내 이기심을 보았다. 엄마의 교통사고 소식을 들으며 사실 나는 내 걱정이 먼저였다. 입원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엄마의 말에, 내려가야 하나. 얼마나 있다 와야 하나. 하던 일은 어떡하지. 애들은, 또 남편은 어쩌나. 내 걱정부터 했다.

 

괜찮다는 말에 다행이다 안도했던 건 엄마에 대한 걱정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나 스스로에 대한 위안이었을지도. 그 마음을 엄마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먼저 전화하지 못했고, 그래서 오지 말라 딱 잘라 말했을 것이다.


아아. 사는 동안 나는 몇 번이나 더 염치없는 딸이 될까. 저밖에 모르는 끔찍한 딸이 될까. 이런 게 자식이라니. 기가 차서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엄마 엄마.”


옹알이가 터진 아기들이 세상에 예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기어 온다. 두 아이를 품에 안았다. 자꾸만 흐려지는 희멀건 벽지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중얼거렸다. 나는 오늘을 잊지 못할 거야.


일러스트 (c) 수명




이전 03화 쉬이 잠들지 못하는 당신에게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