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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May 06. 2019

당신에겐 온전한 내 편이 있나요?

살아가는 데 그리 많은 사랑이 필요한 건 아니니까

우연히 내 책을 읽은 독자 H와 J를 만난 자리였다. H가 내 손을 꼬옥 붙잡고 말했다.  


“작가님은 나랑 같이 살아온 사람 같아요.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글을 쓸 수가 없어. 책 읽다 작가님 엄마 이야기만 나오면 울었어요. 우리 집도 그랬거든요. 아빠 혼자 절 키우셨어요.”


“저도요. 할머니 혼자 키워주셨거든요.” 하고 J가 거들었다.


당황한 나는 ‘저도 엄마 혼자 키워주셨어요.’ 말해야 하나 머뭇거리다가 그만 웃음이 터져버렸다. 우리는 다 같이 웃었다. 그렇게 이상한 고백 타임이 되어버린 순간 깨달았다. 평소에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몰랐는데 알고 보니 나도 그녀들도, 우리는 모두 한 사람 아래에서 자랐다는 걸. 어른이 된 지금에야 ‘엄마 혼자, 아빠 혼자, 할머니 혼자 키워주셨어요.’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각자의 마음속에 아픈 상처 하나씩은 간직하고 있다는 것도.


J가 말했다.

“가족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함부로 하는 말들. 제겐 그게 가장 큰 상처였어요. 부모님이 안 계신 상황에서 친척들 누구 하나 도와주지 않았어요. 오히려 이런저런 말들만 많았죠. 사람들은 어리면 모를 거라고 생각하나 봐요. 하지만 다 알아요. 어려도 다 보고 듣고 느낀다고요. 그런 상황에서 할머니 혼자 꿋꿋하게 저를 키워주셨어요. 저는요. 할머니 품에서 자라는 동안 가난하긴 했지만 단 한 번도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어요. 잘 자랐다고 생각해요. 할머니 덕분에 이만큼 살 수 있었어요.”


H가 말했다.

“전 제 삶에 당당해요. 나름대로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삐뚤어지지 않고 잘 자랐고 스스로 남부럽지 않은 능력도 쌓았어요. 그렇게 아빠가 사랑으로 키워주셨고요. 그런데 한 번은 친정엄마가 안 계신다는 이유로 시댁 어른들이 아빠를 무례하게 대하는 모습을 봤어요. 그때 아빤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앉아만 계셨죠. 왜 그럴까? 우리 아빤 혼자서도 바르게 자식들 키운 대단한 사람인데, 그런 사람에게 왜 이렇게 무례한 걸까? 아빤 왜 죄지은 사람처럼 한마디도 못하는 걸까?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저 역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어요. 두고두고 그때를 잊을 수가 없어요.”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어떤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아가씨 시절, 결혼을 화두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저마다의 결혼관과 남편감에 대해서 열띤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그때 한 친구가 말했다.


“우리 부모님은 남편감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건 없지만 딱 하나는 보셔. 부모가 이혼한 사람은 절대 안 된대. 이혼 가정은 잦은 다툼이나 폭력적인 성향 같은 안 좋은 문제가 있었을 거고, 그 집에서 자란 아이는 애정 결핍이나 정서적 결핍이 있을 거라고. 어쨌든 그게 자라서도 조금이나마 남아서 영향을 미친다는 거야. 그래서 우리 부모님은 이혼 가정은 절대 안 된다고. 정상적인 부모 아래에서 충분히 사랑받으며 자란 건강한 사람이랑 결혼해야 한대.”


어딘가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물론 친구는 우리 집 사정을 잘 몰랐을 테지만, 어떤 이들은 이혼 가정과 그 아이를 그렇게까지 생각한단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이혼 가정에서 자란 내가 건강하지 않은 사람, 사회에서 정상적이지 않은 부류의 사람으로 낙인찍힌 것 같아 씁쓸했다. 지금껏 잊지 못하고 따끔따끔한 걸 보면, 나에게 꽤 큰 상처로 남았던 모양이다. 그렇게 먹먹한 마음을 더듬고 있을 때 H가 말했다.


“그렇지만. 우리 어쩔 수 없이 상처는 받았지만요.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우리만 알 수 있는 게 있어요. 단 한 사람에게만이라도 온전한 사랑을 받으면 제대로 살 수 있다는 것.”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되돌아보면 우리에겐 언제나 남들에 비해 부족하고 외롭고 어려운 삶이 주어졌다. 그럴 때 어떤 이들은 우리를 만만하게 흉보았고 무례하게 대했고 건강하지 않은 사람으로 여겼지만, 그래도 우리는 제대로 살아왔다. 단 한 사람의 온전한 사랑. 엄마의 온전한 사랑이, 아빠의 온전한 사랑이, 할머니의 온전한 사랑이 우리를 이만큼 키운 것이다.


일러스트 (c) 수명


영화 〈계춘할망〉에서 엄마아빠도 없고 소위 불량청소년으로 찍혀 어디에도 마음 붙이지 못하는 손녀에게 계춘할망은 말한다.


“세상살이가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온전한 내 편만 있으면 살아지는 게 인생이라. 내가 네 편 해줄 테니 너는 네 원대로 살라.”


그렇게 손녀 곁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계춘할망을 떠올리니 괜히 또 마음이 저릿하다. 그 모습이 두 아이를 껴안은 우리 엄마와 겹쳐지기 때문이다. 지켜줄게. 사랑해줄게. 네 편 해줄게. 세상 풍파에 맞서겠다던 온전한 내 편이 이렇게나 작고 연약한 사람이었다니. 그 작고 연약한 품에서 나는 무사히 잘 자랐다.


언제든 넘치는 애정과 친절한 호의, 언제고 든든한 울타리와 따뜻한 집이 거짓말처럼 모두 내 것일 리 없다. 아등바등 살아도 잴 것 많고 상처받을 일 많은 세상에서 제 몸 하나 살아내기 빠듯하기에,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사랑받는 일은 그렇게나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살아가는 데 그리 많은 사랑이 필요한 건 아니다. 힘들고 지칠 때 딱 한 명만. ‘내가 네 편 해줄게’ 곁을 지켜줄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충분히,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날의 대화를 곱씹으며 돌아오던 길, 나는 사랑에 대해서 생각했다. 단 한 사람에게만이라도 온전한 사랑을 받을 수 있다면 우리는 제대로 살 수 있다. 작고 연약한 한 사람이 쏟는 사랑이지만, 그 사랑은 너무나 간절하고 단단하고 고요하기에 어마어마한 상처를 모두 다 감싸 안을 만큼 힘이 세다. 정말이지 감사하게도 나는 그걸 살아오면서 느꼈다. 그래서였나. 아주 가끔 상처는 받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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