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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May 13. 2019

우리 너무 슬프지 않아요?

어떤 슬픔들은 따뜻하다

나와 쌍둥이처럼 살아온 사람을 만났다. 놀랍게도 우리는 첫눈에 서로를 알아보았다. 눈 때문이었다. 상냥한 얼굴로 밝게 웃고 있었지만 우리는 슬픈 눈을 가지고 있었다. 누가 그랬던가. 부침 많은 유년을 겪으며 자란 아이들은 눈부터 늙는다고.

  

그녀와 오래도록 대화를 나눴다. 과거의 상처들을 하나둘 꺼내며 스스럼없이 웃고 떠들었다. 누구에게도 솔직히 말하지 못했던 것들 - 아버지에 대한 미움,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사랑, 삶을 무겁게 짓눌렀던 아픔과 버거움, 그리고 내면에 자리한 열등감과 죄책감 같은 것들. 우리만이 나눌 수 있는 대화였다.


“우리 너무 슬프지 않아요?”


나는 물었고 그녀는 슬픈 눈으로 웃었다. 이상한 뭉클함이 느껴졌다. 우리의 슬픔은 결코 따뜻하지 않지만 당신도 나처럼, 나도 당신처럼 슬펐다는 사실이 안도와 위안이 되었다. 그러자 마음이, 그 어떤 경계심도 조바심도 없이 함부로 따뜻해졌다.


“슬픔이란 게 그런 거 같아요. 한 가지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랄까요. 미움 아픔 공허 상실 같은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뒤섞인 거대한 마음이요.”  


그녀와 헤어지고 잠시 무뎌져 살았던 나의 슬픔을 떠올렸다.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늦게 잠이 들었다. 얕은 잠 속에서 꿈을 꿨다. 꿈에서 나는 과거로 돌아가 울고 있었다. 깨어나고 다시 잠들지 못했다.


그녀의 말처럼 ‘슬픔’은 한 가지로 설명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인 마음 같다. 나의 슬픔은 아마도. 그리고 아직도. 아픔과 가장 가까이 닿아 있다. 아프지 않기 위해서 그걸 건드리지 말아야 할까. 마음속 깊은 곳에 가만히 두어야 할까. 그러다 문득 그녀가 걱정되었다. 혹시 당신도 악몽을 꾸었나요. 우리가 그것들을 괜히 꺼낸 걸까요. 괜찮을까요, 우리.  


잠들지 못한 사이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노트북을 열어 묵혀둔 글들을 꺼냈다. 읽고 더듬고 쓰면서 나를 다독였다. 돌아보면 나에겐 이런 아침이 많았다. 그때마다 쓰면서 아파하고 슬퍼했던 것 같다. 그러고 나면 앓고 난 후의 아침처럼 몸도 마음도 한결 가뿐해졌다.


나는 생각했다. 아프더라도 우리 슬픔, 건드리는 편이 낫다고. 생각날 때마다 서랍을 열어 꺼내 쓰는 무언가처럼 자주 열었다 닫았다 확인하고 꺼내 써야 하는 마음이라고.


슬픔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나와 내 곁에 사람들이 선명하게 살아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위하여. 매일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는 일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잊지 않기 위하여. 서성이는 슬픔들을 알아보고 서로 기대어 따뜻해지기 위하여.


세상의 모든 슬픔을 헤아리고 싶은 아침이었다.


일러스트 (c) 수명



어떤 슬픔들은 따뜻하다.

슬픔과 슬픔이 만나 그 알량한 온기로

서로 기대고 부빌 때,

슬픔도 따뜻해진다.

차가운, 아니다, 이 형용사는 전혀 정확하지 않다.

따뜻한 슬픔의 반대편에서 서성이는 슬픔이 있다.

그 슬픔에 어떤 형용사를 붙여주어야 하는가.

시린 슬픔?

아니다, 여전히 부족하다.

기대고 부빌 등 없는 슬픔들을 생각한다.

차가운 세상, 차가운 인생 복판에서 서성이는 슬픔들…


- 조병준 〈따뜻한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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