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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May 20. 2019

길고양이의 안부를 묻다

6번 출구 자전거 주차장에 고양이 안 살아요

화단이는 우리 아파트 앞 골목길 화단에 살던 고양이였다. 누군가 때마다 사료를 채워주었고, 겨울에는 스티로폼 집도 만들어주었다. 종종 길고양이 학대 사건이 오르내리고 밥그릇이 사라지거나 불만 섞인 메모가 붙어 있기도 했지만, 다행히 녀석은 1년 정도 화단에서 살았다. 화단에서 사니까 이름도 화단이. 동네에선 꽤 유명한 길고양이였다.


안녕. 잘 지내니. 나도 오가며 눈도장을 찍었었는데 외출이 뜸한 사이 녀석은 집을 옮겼다. 바로 코앞. 지하철역 입구 자전거 주차장 구석에 새집이 생겼다. 그 역시 화단이를 돌보는 누군가의 손길이리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들여다보며 챙기는 꾸준한 손길이 위태로운 생명 하나를 지키고 있었다.


지하철을 타러 오가는 길에 화단이를 마주친다. 버려진 지 오래된 자전거들 사이에 빼꼼 화단이가 보인다. 녀석은 오전 내내 제집 위에 올라가 볕을 쬔다. 얼룩덜룩 거친 털이 햇빛에 반짝인다. 노란 눈을 깜빡이며. ‘인간들은 참으로 바쁘게 움직이는군.’ 그런 표정으로 자신을 힐끔거리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그러다 해가 기울어 그늘이 생기면 슬그머니 사라진다. 보기 드문 느긋한 길고양이다. 사람을 무서워하지도 않고 눈을 마주치면 야옹야옹 애교를 부리기도 한다. 나는 그런 녀석이 귀여워 마주칠 때마다 사진을 남겼다.   

엊그제는 우리 동네 커뮤니티에 화단이 사진과 함께 “일광욕하는 화단이. 옆에 못 보던 아깽이 하나가 밥을 먹고 가네요”라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게시물 아래 화단이의 사진과 댓글이 달렸다.


“저도 오늘 아침에 봤어요.”

“밤에 추워서 지나가는 사람한테 비비던데… 딱합니다.”

“엎드릴 수 있게 박스가 좀 컸으면 좋겠네요.”

“옆에 아기 고양이 새로 찾아왔어요. 오다가다 잘 있는지 봐주세요.”


사람들은 화단이를 걱정하고 있었다. 새로 온 아기 고양이의 존재도 알고 있었다. 내가 그랬듯이 오가며 안부를 확인하고 사진을 남긴 사람들. 그렇게 화단이는 사랑받고 있었다.


춥고 배고픈 겨울은 길고양이들에게 가장 힘든 시기이다. 겨울이 되면 유독 뚱뚱해지는 길고양이들, 실은 살이 찐 것이 아니라 부은 것이라고. 맵고 짜고 상한 음식물 쓰레기를 주워 먹어서 신장이 망가진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후로 한동안은 길고양이들을 마주칠 때마다 마음이 서늘했다. 가끔 사다 주던 참치캔조차 고양이에겐 너무 짜서 좋은 음식이 아니었다. 나는 고양이를 잘 몰랐다. 대부분의 사람도 모를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말이지만, 다른 종(種)인 우리는 서로에 대해 너무도 모른다. 그런 우리, 서로에게 적극적인 손길을 내밀진 못하더라도 애정 어린 눈길이라도 건넸으면 좋겠다. 눈길 하나 둘 셋. 그렇게 작은 관심이 더해지면 추운 바깥을 떠도는 생명 하나가 특별해진다. 잘 지내는지 잘 살고 있는지 함께 지켜볼 수도 있다. 우리 동네 화단이처럼.


일러스트 (c) 수명


눈 위에 발자국 

지워 버렸다.


고양이 잡아갈까 봐

집으로 가는 

꽃송이 꽃송이

싹 지워 버렸다.


“26동 지하실에 

고양이 안 살아요.”


- 김미혜 〈고양이 발자국〉



“6번 출구 자전거 주차장에 고양이 안 살아요”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 많은 사람이 씩씩하게 살아가는 화단이를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 한편, 괜히 해코지 당할까 봐 사는 곳을 숨기고도 싶은 이상한 마음이 든다. 길고양이의 수명은 3년 정도라고 한다. 운 좋은 화단이라도 그 정도 살 것이다. 아무래도 슬픈 짧은 묘생(猫生). 지금이 녀석에겐 행복한 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녀석이 앉은 자리는 봄이면 벚꽃이 눈처럼 흩날리는 자리. 꽃 피는 봄이 오면 차가운 얼음눈 대신 따듯한 벚꽃눈이 펄펄 내릴 것이다. 녀석에겐 멋진 구경이 되겠지. 그러니 그때까지 부디. 지난겨울을 무사히 살아냈듯이 올해 겨울도 무사히 살아남기를. 꾸벅꾸벅 조는 화단이를 보며 바랐다.






+) 화단이의 근황 알려드려요. 

결국, 화단이는 벚꽃눈을 구경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를 만나 집고양이가 되었거든요. 동네 커뮤니티에서 마지막으로 본 화단이는 잔꽃무늬 옷을 입고서 아주머니 품에 폭 안겨 있었어요. 이름도 꽃님이로 바꾸었다고 해요. 그 모습이 벚꽃눈보다도 따듯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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