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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May 27. 2019

무지렁이 시인의 말들

나의 무지렁이 시인에게

나는 산골짝서 농사나 지으며 살던 무지랭이라
세상을 잘 몰라.


평생 농부로 살아온 어르신을 취재하다가 이런 얘기를 들었다. 작가 선생이야말로 책도 많이 읽고 글도 쓰니까 나보다 잘 알 거 아닌가. 나까짓 게 나서서 얘기한다고 누가 좋아할까. 어르신은 허허 웃으며 자기 이야기 꺼내기를 주저하셨다. 해지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며 다시 밭에 나가봐야 하신다기에 서둘러 통화를 마쳤다. 나는 어르신 살아온 이야기 듣는 게 좋은데…. 아쉬운 마음을 달래다가 좀 전에 들었던 ‘무지랭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사투리인가? 사전을 찾아봤다. 표준말로 ‘무지렁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을 뜻하는 순우리말이었다.


어르신 말씀대로라면, 많이 배우지 못하고 평생 농사를 짓거나 고기를 잡거나 물질을 하거나 장사를 하거나 소금밭을 일구며 ‘무지렁이’로 살아온 사람들을 나는 많이 만났다. 일상적인 언어와 구성진 사투리, 제멋대로 말투와 무덤덤한 목소리로 전해지는 그들의 이야기를 넋 놓고 듣다가는 깨달았다. 나는 무지렁이의 삶에 감동한다는 것을. 어째서 그런 삶에 내 마음이 움직이는 걸까. 우연히 읽은 시에서 그 이유를 짐작했다.


눈이 내린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춤추며 내리는 눈송이에
서투른 창이라도 겨눌 것인가
아니면 어린 나무를 감싸 안고
내가 눈을 맞을 것인가

저녁 정원을
막대를 들고 다닌다
도우려고.
그저
막대로 두드려주거나
가지 끝을 당겨준다.
사과나무가 휘어졌다가 돌아와 설 때는
온몸에 눈을 맞는다

얼마나 당당한가 어린 나무들은
바람 아니면
어디에도 굽힌 적이 없다 -
바람과의 어울림도
짜릿한 놀이일 뿐이다
열매를 맺어본 나무들은
한 아름 눈을 안고 있다
안고 있다는 생각도 없이.

- 울라브 하우게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


‘눈이 내린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말하는 시인. 그저 도우려고, 작은 나뭇가지와 눈송이 하나조차도 다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준다. 나는 이 시에서 그 어떤 복잡한 문장도 의미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저 오래 바라보고 돌봐온 것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느낄 뿐이었다.


울라브 하우게는 노르웨이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평생 그곳에서 정원사로 일했다. 독학으로 글을 익혀 시를 읽고 썼다. 일터였던 차갑고 조용한 숲에서 한 손에 도끼를 든 채 시를 썼다. 그는 무지렁이 시인이었다.


나는 감동했다. 오랫동안 돌봐온 생명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은 사려 깊었고, 어찌할 수 없는 세계를 이해하는 마음은 지혜로웠다. 평생 자연 속에서 나무를 돌보며 살아온 삶이 이런 시를 쓰게 했다. 울라브 하우게의 시를 읽으며 자신을 ‘무지렁이’라고 말하며 제 삶을 부끄러워하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언어에 능통하고 많이 배워야만 현명한 사람일까. 그런 사람들의 삶이라야 위대한 것일까.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나는 울라브 하우게와 같은 시인들을 많이 만났다. 비록 시는 쓰지 않지만 내뱉는 말마다 시가 되는 사람들. 평생 노동하며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삶 속에서 체화된 그들만의 언어가 있다. 쉽고 정직하고 진솔한 말들. 그 말들이 무심하게 모여든 이야기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하루하루 노동으로 일군 삶이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나는 느꼈고,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넋 놓고 감동했던 것이었다.


일러스트 (c) 수명


노르웨이가 아닌 섬진강변에서 울라브 하우게와 같은 시인 한 분을 만난 적이 있다. 몇 해 전, 취재차 찾은 전남 곡성에서 최태석 씨를 만났다. 그는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평생 농사를 지어왔다. 어린 시절 서당 훈장이었던 할아버지께 한문을 배웠지만 오랫동안 잊고 살다가 환갑이 넘어서야 한시를 쓰기 시작했다.


牛-소, 너를 길러온 지 몇 해이던고

養牛由來歲月深
石田耕牛深時間
牆耒不知何歲月
歲月流去銹故障
너를 길러온 지 몇 해이던고
돌투성이 밭 갈 때가 언제이던가
담벼락에 세워둔 쟁기는 언제 쓰려는가
세월이 가는 동안 녹이 슬고 말았네

餘力無用草喰牛
耕耘畦畝爲耢作
田耕無牛審見我
生草今來積載函
풀만 먹고 자란 소 힘이 남아돌건만
쟁기질은 경운기가 도맡아 하네
할 일 없는 소 나만 쳐다보니
적재함에 있는 풀 언제 주려는가


오래 길러온 늙은 소를 바라보며 쓴 시. 평생 농사짓고 소를 키우며 살아온 삶이 이런 시를 쓰게 했다. 나는 시인에게 친필 사인을 받았다. 거기에는 ‘朝起之好事來’라고 적혀 있었다.


“고 작가님,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좋은 일이 옵니다.”


허허 웃으며 말하는 무지렁이 시인에게 나는 또 한 번 배웠다.



요즘 나는 무지렁이처럼 살고 있다. 온종일 몸을 움직여 생명을 돌보는 노동을 하고 있다. 책상에 앉아 글을 쓰던 예전과는 달리,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짓고 청소를 하고 아이들을 돌본다. 하루가 금방 간다. 밤이 되면 너무 피곤해서 곯아떨어지고 만다. 자고 일어나면 다시 아침. 매일 똑같은 하루를 사는 것 같다.


어떤 때는 나 자신이 아주 하찮은 존재처럼 여겨진다. 내가 얼마나 평범하고 어리석은 존재인지 깨닫는다. 그러나 하루의 어떤 순간. 아주 사소한 것에서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을 느낀다. 오늘은 고무나무 화분에서 막 돋아난 연둣빛 잎을 발견했다.


“얘들아, 봄이 왔나 봐.”


아이들이 이파리를 만져볼 수 있도록 가까이 데려갔다. 이파리를 만지는 작은 손들. 어린 이파리를 만지는 아이들의 손바닥을 만져봤다. 따뜻하고 보드라운 생명이 느껴졌다. 그 순간이 너무 행복해서 잠시만 시간이 멈추기를 바랐다. 생각했다. 이야기는 목소리 같다고. 이야기는 멀리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속삭이고 있었다. 글 쓰는 내가 이런 삶을 살고 있음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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