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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May 09. 2019

다시 요가를 시작하기로 했다

내가 나를 돌보고자 하는 다짐으로

밀가루 반죽을 만드는 것처럼 시간도 조물거릴수 있었으면 좋겠다. 치대면 치댈수록 부드러워지고, 주욱 늘이거나 얇게 피거나, 뭉치면 다시 툭 덩어리가 되는 그런 유연한 존재였으면 좋겠다. 그러나 바람과는 달리, 나의 시간은 끊어질 듯 팽팽한 고무줄 같다. 오랫동안 아슬아슬하고 위태롭고 팽팽했다.


아이를 낳고 키우고 일하고 살림하고 다시 일하는 일상은 초단위로 흘러갔다. 정말 그러고 싶지 않은데 나는 매일 시간이 없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할 일들, 하고 싶은 일들은 아주 많은데 시간이 없다. 정말 너무나 없다. 시간을 늘리기 위해서는 밥을 굶거나 잠을 줄여야 했다. 한동안 그렇게 나의 몸과 마음을 소진시켰다. 나는 엉망이 되었다.


온몸이 아파서 돌아누워 자는 것이 어렵고 아침마다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켰다. 사소한 것에도 왈칵 울화가 치솟고 입 안에 커다란 덩어리를 물고 있는 사람처럼 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것들을 꿀꺽 삼킨 채로 걷고 또 걸었다. 걷는 동안에도, 차라리 이 시간에 책이라도 더 읽었다면 글이라도 더 썼다면. 자책하는 내가 싫었다.


그렇게 걷다가 골목 안에 작은 요가원을 발견했다. 가정집 같은 대문에 겨우 조그만 팻말 하나 붙어 있는 게 전부였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소규모로 정통 요가를 수련하는 곳이었다. 회원들과 명상, 환경, 채식에 관해서도 이야기 나누곤 했다. 굳이 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싶다고 연락하고 오늘 찾아갔다. 짐짓 아무렇지 않은 사람처럼, 요가는 처음인 것 같은 설레는 얼굴을 하고 선생님과 마주 앉았다. 긴 의자 위에 다리를 쭉 뻗고 편하게 앉아있던 선생님이 말했다.


"머리카락에 껌이 붙은 것처럼 잔뜩 엉켜있는 느낌이 들 때가 있잖아요. 그때는 대단한 게 필요한 게 아니에요. 빗질을 해주면 돼요. 엉킨 머리카락을 정리하는 것처럼, 요가는 몸과 마음을 빗질하는 수련이에요. 요가를 하면서 호흡을 정리하고 굳은 몸을 풀고 피가 잘 돌도록 움직이고 엉킨 마음을 풀어주면 돼요."


5년 전에 그만두었던 요가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진지하게 수련해보고 싶다. 굳이 여기에 이 글을 적는 건 다짐이기 때문이다. 시간과 스트레스에 엉키고 할퀴어 망가지지 않겠다는 다짐. 나의 몸과 마음을 더는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다짐. 이제야 내가 나를 돌보고자 하는 굳은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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