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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Apr 30. 2019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택배 아저씨

근로자의 날에도 일하는 택배기사들

하루는 밤 11시에 택배 아저씨가 찾아왔다.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한 당일배송 책 때문이었다. 나는 너무 놀라서 "아직까지 일하시는 거예요?" 물었더니 아저씨는 지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뛰어갔다. 아직 배달할 택배가 남은 것이다.


이후로 나는 당일 배송 서비스를 사용하지 않는다. 단지 주문한 책을 내일 받는 것이 아쉬워 누군가의 노동력을 밤까지 소진시키고 싶지 않았다. 하루 만에 책을 다 읽을 것도 아니고.

오늘은 엘리베이터에서 택배 아저씨를 만났다. 우리 집이 있는 층, 6층과 3층 버튼이 눌러져 있었다.


"죄송해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이것만 두고 올게요."


부탁한 아저씨는 정신없이 뛰어가더니 우리 집 앞에 택배를 놓고 초인종을 눌렀다. 집주인인 내가 집에 없으니 당연히 대답이 없다. 아저씨는 후다닥 달려와 다시 엘리베이터를 탔다. 6층에서도 3층에서도 아저씨는 내렸고. 나는 잠시 엘리베이터를 잡아드렸다. 겸연쩍게 웃으며 연신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아저씨에게서 짙은 땀 냄새가 났다.

내일은 근로자의 날. 택배기사는 특수고용 노동자로 분류되어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내일도 정상 근무한다. 아저씨는 내일도 엘리베이터 층층마다 버튼을 누르고 정신없이 뛰어다닐 것이다.


휴대폰으로 '당일 배송' 글자가 반짝이는 택배를 주문하려다 그만두었다. 아직 어딘가에 아저씨의 땀 냄새가 배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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