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제로 된 사물함은 열 때는 딸깍, 닫을 때는 텅! 한다. 버려도 될지 가지고 있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이면지 한두 장뿐이다. 옷장 안에는 옷이 빽빽하게 꽂혀있다. 옷들을 쳐다보면 갈수록 모르게 된다. 그 사이에 나도 같이 꽂혀서 오늘은 외출을 할 수 없다. 땡. 오븐을 열었다. 향기는 가득하지만 쿠키는 없었다. 뜨겁게 달궈진 빈 플레이트를 바라보면 가슴팍을 쿵 쿵 치게 된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고 기대만이 차있는 사람. 마구마구 달릴 땐 여닫는 소리가 부딪히지만 가만 앉아 딸깍 열고 드르륵 당겨서 기다려보면 텅! 비어있는 사람.
서현님의 그림. 인스타그램 @skim0o0
창비학당 <고유한 에세이> 1기 서현님의 글을 공유합니다. 나는 무엇일까요? 누구가 아닌 무엇으로 나를 쓰기. 그림을 그리는 서현님은 여기서 처음으로 글을 써 보았는데요. 매시간 독특하고 자유로운 글로 우리를 놀래켜 주었습니다. '쓴다'라기보다 '그린다'에 어울리는 글이랄까요. 그림을 그리듯 영상을 만들듯 자신의 이야기를 짓는 서현님. 독자로서, 서현님의 고유한 글쓰기가 변치 않기를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