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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Aug 01. 2019

강얼

나는 늙지 않을까 두려웠다

할머니는 내게 요망진 아이라고 했다. 나는 시계를 분해하는 걸 좋아했다. 어머니는 나를 이상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할머니는 매년 내게 시계를 선물했다. 그때마다 나는 시계를 분해했다. 다시 시계를 조립할 줄은 몰랐기 때문에 내 손목엔 늘 고장난 시계가 매여 있었다. 

그 작업이 시시해질 즈음 나는 현미경을 들고 다녔다. 바닷말, 귤껍질, 생선 비늘, 지렁이, 매미 날개 따위를 관찰했다. 50배, 100배. 사물을 확대해 들여다보면 매혹적인 세계가 보였다. 하지만 현실 감각이 없었다. 나는 손으로 만지고 부술 수 있는 걸 원했다. 그때부터 사냥을 시작했다.

한여름에 매미를 잡아 날개를 뜯고 움직임이 멈출 때까지 지켜봤다. 사슴벌레와 장수하늘소, 장수풍뎅이 따위를 잡아와 싸움을 시키기도 했다. 저희들끼리 물고 뜯고 지쳐 싸움을 멈추면 몇 날이고 가두어 생을 마감시켰다. 낚시로 잡은 물고기는 고인 물에 가두어 숨이 막혀 죽는 걸 기다렸다. 잔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사내아이들 대부분은 때리고 죽이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놀이가 끝나면 망가진 곤충들이 공터에 버려져 죽어갔다. 그리고 모두 다시 사냥을 떠났다.

제주 바다를 건너 육지로 떠난 아버지는 몇 해가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낯선 남자들이 어머니 곁을 맴돌았다. 나는 채집통을 열어 곤충의 다리를, 날개를, 더듬이를 잡아 뜯었다. 나는 늙지 않을까 두려웠다. 제주 바다를 건너고 싶었다. 이 집을 떠나 영원히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어느 날 밤, 나는 꿈에서 곤충이 되어 있었다.









<마음 쓰는 밤> 5기 강얼님의 글을 공유합니다. 얼님은 매시간 쓸쓸하고 건조한, 바스락거리는 글로 모두의 마음을 건드리는데요. 그 기저에는 투명한 슬픔이 고여 있어, 한 번쯤은 그러했던 우리들 마음이 비쳐 보이곤 합니다. 특히 이 글은 몇 주가 지나도 여운이 짙은 글이라 공유합니다. 얼님의 쇼트쇼트 단편들이 모여 책으로 나왔으면 좋겠다! 이 날의 글쓰기 주제는 '나의 이름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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