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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Aug 29. 2019

인희

딸! 보이나?

"엄마!"


소리치며 달려가 요리를 하고 있는 엄마를 뒤에서 와락 안아주었다. 엄마만 가진 폭신하고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대구에 왔다. 자주 오겠다고 하고선 잘 지키지 못해서 항상 미안한 마음을 안고 산다.


"어구, 우리 딸 좀 안아보자."


엄마는 뒤를 돌아 나를 세차게 안아주었다. 내가 캑캑거리자 웃으면서 손을 풀어준다. 엄마가 시력이 많이 나빠진 것을 전해 들었다. 얼마나 나빠진 건지 실감이 나지 않아 손가락을 코앞까지 갖다 대며 장난스럽게 말해 보았다.


"이거 몇 개일까요?"


엄마는 열심히 손가락을 보려고 애를 쓰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이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몰라. 진짜 안 보인데이."


이젠 세상이 뿌옇고 까맣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 딸 온다고 밥을 짓고 있는 모습을 보니 뭉클했다.


4년 전부터 엄마는 당뇨 합병증으로 몸이 하나 둘 망가지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주 3일 5시간씩 투석하는 것을 시작으로 지팡이가 없으면 혼자서 몸을 지탱할 수도 없게 되었고, 결국 얼마 전부터는 시력마저 잃게 되었다. 자꾸만 쇠약해지는 엄마의 건강 상태에 걱정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쉰이라는 나이에 맞지 않게 초췌하고 나이 들어 보이는 모습을 볼 때마다 이 모든 걸 감당해야 하는 엄마의 인생이 너무나 가혹하다 느껴진다.


"그래도 우리 딸 얼굴은 좀 보이네."


그 말을 듣고 엄마가 어릴 때 읽어주었던 전래동화 ‘보이나? 보이네.’라는 책을 패러디하며 장난을 쳐보았다.


"보이나?"


엄마는 내가 무얼 패러디한지 금세 알아채곤 "보이네."라고 말하며 활짝 웃어 보였다. 웃어 보이는 눈 주변으로 가늘게 주름이 늘어진다. 자식 둘을 키우기 위해 혼자 짊어졌던 희생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웃어 보이는 엄마의 모습에 나는 엄마를 더 사랑해주고 아껴 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집에 가는 날.

내가 떠나버리고 혼자 있을 엄마 모습이 눈에 밟혀 신발장 앞에서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그런 마음을 알아챈 엄마는 내게 장난스럽게 말을 걸었다.


"딸! 보이나?"


그 말을 들으니 가슴속부터 퍼지는 따뜻한 기운이 내 몸을 감싸는 느낌이 들었다. 엄마의 딸로 태어나 과분한 사랑을 받는 것이 새삼 감사하다. 나는 그 사랑을 깊게 들이마시며 당당하게 외쳤다.


"보이네!"








창비학당 <고유한 에세이> 1기 인희님의 글을 공유합니다. 생애 처음으로 솔직한 나의 이야기를 써본 인희님은, 글쓰기도 이 수업에서 처음 해보았다고 하는데요. 글이 너무나 좋습니다.


인희님은 다섯 번의 글을 모두 울면서 읽었고, 동시에 모두를 울리기도 했습니다. 삶이 우리에게 미소 짓지 않더라도, 우리는 삶에게 미소 지을 수 있다는 걸 스물넷 인희님의 글에서 느꼈습니다. 서툴지만 질박하고, 슬프지만 따뜻합니다.


수업에서 쓴 글을 모아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한 인희님은 얼마 전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습니다. <고유한 에세이>에서 쓴 글들을 차례대로 올렸는데요. 어떤 이야기가, 어떤 삶이 아름답게 시작되는 것은 무엇인지 뭉클하게 지켜볼 수 있었어요.


인희님에게 "난 아무것도 쓰지 않고 그냥 살아왔던 시간도 중요하다고 말해 주고 싶다"는 박완서 작가의 말을 전해주고 싶어요. 아무것도 쓰지 않고 살아온 삶이, 이제야 쓸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그녀에게 무한한 사랑과 용기를 전합니다.



+) 인희님의 브런치에서 다른 글도 공유합니다. 꼭 한 번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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