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수리 Oct 14. 2019

내 글이 몹시도 부끄러워서

창비학당 <고유한 에세이> 가을의 기록들

1


창비학당 <고유한 에세이> 2기 세 번째 밤. 글쓰기 수업에서 글쓰기만큼이나 중요한 게 있는데, 모인 사람들의 분위기랄까 주고받는 기운 같은 게 아주 중요하다. 이건 내가 어떻게 만들 수가 없고, 모인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힘, 혹은 운이라고 생각한다. 고유한 에세이 2기 학인들은 조용하고 잔잔하다. 사람으로 치면 다정함을 품고 있는 내성적인 사람 같달까.


수업의 절반에 이르는 동안 모두가 출석과 과제를 거르지 않고 조용히 성실히 해왔다. 조용히 용감하기도 하다.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가장 약하고 어두운 이야기를 쓰고 읽는다. 내가 처음 공개적으로 글을 썼을 때처럼.


'섬처럼 있고 싶진 않은데 내 이야기는 하고 싶고. 그래서 글을 쓴다'는 사람. '무언가를 보고 따라가야 하는데 무언가를 보고 도망치는 방식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이제야 쓴다'는 사람. '나답게 살고 싶어서,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 쓴다'는 사람들. 나는 이 성실하고 용감한 사람들에게 좋은 스승이 되고 싶다. 정말 그러고 싶다.  / 191005 기록



2 


"다른 분들 글에 비해 제가 너무 못쓴 거 같아요. 다들 너무 잘쓰셔서 제 글이 너무 부끄러워요." 낭독할 차례가 오면 읽기를 주저하는 학인들이 많다. 그러면 나는 "저마다 고유한 이야기가 있고 문체가 있는걸요. 진솔한 글이라면 세상에 못쓴 글은 없어요. 걱정 말고 읽어보세요."라고 격려한다. ⠀


그러나 실은 거의 모든 수업에서 나는 좌절한다. 내가 계속 글을 써도 될까. 좋은 글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내가 왜 작가라는 거지? 작가로서 자신감이 뚝뚝 떨어지고 마음이 한없이 작아지다가 나를 반성하게 된다. 내가 보여주기 위해 꾸며진 글을 쓴 건 아닌지 하고. ⠀


처음으로 꺼낸 자신의 이야기. 솔직하고 뜨거운 날 것의 글을 만날 때면 더더욱 그렇다. 내 글이 몹시도 부끄러워진다. 나는 거의 모든 수업마다 이런 부끄러움을 느끼며 처음으로 돌아간다. 내가 가르쳐주고 이끄는 것 같지만 아니다. 사실은 내가 배워간다. 아주 소중하고 중요한 것을. 처음 글 쓰던 마음을. / 191011 기록

매거진의 이전글 쓰기가 체질, 성실한 쓰기 생활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